[타클라마칸 리포트]<6·끝>외국기업 ‘골드 러시’

  • 입력 2005년 7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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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의 관문 충칭(重慶)의 창안(長安) 스즈키 공장. 공장 앞 대형 주차장에는 막 출고된 산뜻한 디자인의 새빨간 소형차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최근 일본을 비롯한 세계 몇몇 시장에서 동시에 선보인 새 모델 1300cc급 ‘스위프트’입니다. 이젠 여기서도 값싼 구식모델은 잘 안 먹힙니다.”(장러닝·張樂寧 주임) 일본의 스즈키가 중국 회사와 합작투자 형식으로 설립한 이 회사는 작년에 11만 대를 생산해 팔았다. 목표치보다 1만 대를 웃돌았다. 내년에는 1600cc 이상의 중형차로 모델을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 서부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의 행보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일찌감치 중국 시장을 노리고 들어왔던 외국기업들이 속속 수익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신중하게 진출 여부를 저울질해 오던 기업들도 잇따라 서부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서부 시장을 향해 뛰어라=지도상 삼각형으로 연결되는 청두(成都)와 충칭, 시안(西安)의 ‘트라이앵글’은 외국기업이 몰려드는 서부의 대표적 시장이다.

청두는 세계 500대 기업 중 78개를 포함한 3000여 개, 시안에선 인텔 IBM 소니 에릭슨을 비롯한 전자 정보기술(IT) 업체들과 미쓰비시 볼보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외국기업이 시장 확대에 한창이다.

한국기업으로는 삼성전자와 한화 CJ 효성 등이 진출해 있다. 이 중 SK㈜와 삼양사가 합작으로 쓰촨 성 쯔궁(自貢) 시에 8750만 달러를 들여 설립한 휴비스가 대표적이다. 폴리에스테르 원단을 생산하는 휴비스는 지난해 7월 공장 준공 이후 1년 만에 2억64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흑자구조로 전환했으며 2010년에는 매출 60억 달러에 경상이익 6억 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성공에는 10년간의 철저한 사전준비가 큰 힘이 됐다.

총성 없는 전쟁
중국 서부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서부가 ‘미래의 시장’이 아니라 엄청난 구매력을 갖춘 ‘현재의 시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IBM, 인텔, 소니 등 세계적인 정보기술(IT)업체 점포가 가득 들어찬 용산전자상가 3배 크기의 청두전자상가. 청두=원대연 기자

▽서부가 매력적인 이유=무엇보다 동부에 비해 값싸고 풍부한 양질의 노동력이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힌다. 실제 공장 노동자의 한 달 임금은 1000위안(약 12만5000원)을 조금 넘는 정도다. 대학을 졸업한 화이트칼라도 3000위안(약 37만5000원) 안팎이면 고용이 가능하다.

한국의 코스닥등록업체 KMW가 시안에 세운 화천통신은 한국에서 생산을 중단했던 제품을 최근 시안 공장에서 부활시켰다. 안테나 등 이동통신 부품이다. 한국에선 높은 인건비와 경상비로 원가를 맞추지 못해 손을 뗐던 제품으로 연간 300억 원 규모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3억7000만 명에 이르는 거대한 시장과 풍부한 자원도 기업들을 빨아들이는 자석이다. 인구의 1%만 물건을 사도 370만 명의 소비자를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반면 액정표시장치(LCD) 연마제와 브라운관 형광체 재료로 쓰이는 시안의 희토(稀土) 생산업체 맥슨-코레스는 서부 철광석 산지에 묻힌 원료를 노리고 진출했다.

‘현대산업의 감초’라 불리는 희토는 “중동에는 석유가 있고 중국에는 희토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풍부하다. 이 회사 권태호(權泰浩) 부이사장은 “t당 300만 위안(약 3억7500만 원)에 이르는 값비싼 희토의 채취 가공은 물류상의 불리함에도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쓰촨 성만 6000만 마리에 이르는 돼지에 한국 시장의 35.7배에 이르는 5억 t의 사료 시장을 염두에 둔 CJ㈜도 2003년부터 청두에서 사료 생산을 시작해 지난해 12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중국 정부의 파격적 지원과 구애도 외국기업의 진출에는 매력적인 요인이다.

경제개발지구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50∼100%에 이르는 세금 감면 혜택과 땅값 할인 등 각종 지원을 받는다. “서부에 투자해 달라”는 중국 정부의 간곡한 권유와 함께 공장문 앞까지 도로가 깔리는 등 인프라와 편의시설 확충이 따라붙는다.

외국기업 차량의 번호판을 일반 파란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구별해 외교관 차량처럼 예우해 주기도 한다.

▽“뒤따라 들어가면 늦는다”=외국기업의 발 빠른 움직임에는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시장을 선점(先占)해야 한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1996년 청두에 동물 치료제와 화학촉진제 공장을 세운 바이엘은 이후 9년간 수익을 내지 못했다. 적자에 허덕이면서 쏟아 부은 자금은 1600만 달러.

그러나 허첸(何謙) 현지법인 대표는 “사전조사 당시 시기상조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시장을 선점한다는 차원에서 결정된 전략적 투자”라고 말했다. 그는 “잘된다고 다른 기업을 따라 뛰어들면 그땐 이미 늦었다”고 단언했다.

바이엘은 중국인 농민들을 상대로 매년 200회 이상의 세미나를 여는 등 소비자 설득에 나섰다. 무관심한 빈농들에게는 공짜 도시락과 펜 등을 돌리며 참여를 유도했고 제품 라인을 수차례 조정했다. 그 결과 작년에 처음으로 500만 위안(약 6억2500만 원)의 수익을 냈다.

1998년 ‘한화염호화공유한공사’란 한중 합작기업을 만들어 서부의 끝자락인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망초를 채취해 염색, 세척의 원료인 무수망초(황산나트륨)를 생산하며 흑자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한화도 시장 선점을 위해 뛰어든 대표적 사례다. 당장의 이익보다도 장기적 관점에서 남들보다 일찍 뛰어든 것이 예상 밖의 큰 결실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 이 회사 고광욱(高光郁) 법인장의 설명이다.


■서부대개발 실무 사령탑 中국무원 두핑 실장

중국 서부대개발의 실무 최고책임자인 국무원 서부지구개발영도소조 판공실의 두핑 종합계획실장. 베이징=하종대 기자

‘開國良好 困難不少(카이궈량하오 쿤난부사오·시작이 좋긴 하나 난관도 적지 않다).’

두핑(杜平·49) 중국 국무원 서부지구개발영도소조 판공실 종합계획실장은 서부대개발 5년의 성과와 문제점을 여덟 글자로 정리했다.

서부대개발의 중국 중앙정부 실무 최고사령탑인 두 실장은 서부대개발을 처음 입안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국 언론으로서는 최초로 본보와 인터뷰를 가진 두 실장은 “서부대개발은 농촌과 도시, 동부와 서부 사이의 불균형을 해결하고 수출 위주의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동시에 해결하는 과학적 경제발전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서부대개발 착수 5년을 평가한다면….

“철도 도로 등 인프라의 완성과 생태건설, 산업발전 및 구조조정, 인력 및 자원개발 등 4가지 부문에서 성과가 있었다. 5년 동안 8만 km의 도로와 5000km의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17개의 공항을 건설했다. 생태계 복원으로 연 20여 차례의 황사가 10여 차례로 줄었다. 반면 동서부 간 경제적 격차가 줄기는 커녕 되레 벌어지는 등 문제점도 적지 않다.”

―그런 문제점에 대한 대책은….

“정책을 전면 조정하려 한다. 먼저 서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동부에 맞추겠다는 목표부터 수정하려 한다. 서부가 동부를 따라잡는 것은 물론 격차를 줄이는 것도 쉽지 않다. 우선 교육시설 및 위생환경의 개선, 물과 전기의 공급 등 정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동서격차가 없도록 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한국 기업들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장 구미가 당기지 않더라도 남보다 시장을 선점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서부 진출에 있어서 몇 가지 힌트를 드린다면 먼저 고기술 제품이 아니라면 현지에서 팔 수 있는 물건에 투자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서비스 산업이나 호텔 등 도시개발용 부동산 산업에 진출하라는 것이다.”

반병희 차장(팀장·국제부)

하종대 기자(사회부) 이호갑 기자(국제부)

이은우 기자(경제부) 이정은 기자(정치부)

원대연 기자(사진부) 김아연 정보검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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