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신사참배 모자라 日王까지 나서나”

  • 입력 2005년 5월 27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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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사이판 위령제 방문 항의태평양희생자 유족회 양순임 대표와 사회단체 회원들이 26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왕 사이판 위령제 방문을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일왕 사이판 위령제 방문 항의
태평양희생자 유족회 양순임 대표와 사회단체 회원들이 26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왕 사이판 위령제 방문을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일본 고위관료들의 잇단 망언으로 한· 일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아키히토(明仁) 일왕(日王)이 전후 처음으로 과거 식민지에서 ‘전몰자 위령제’를 강행할 것으로 알려져 국내 유족들이 분노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로도 모자라서 일왕이 사이판 반자이(만세) 절벽에서 위령제를 지낸다니요! 그 곳은 수많은 한국인 징용자들의 한(恨)이 서린 곳입니다.”

태평양전쟁유족회 양순임(梁順任) 대표는 27일 울분을 참지 못했다.

일왕 부부는 다음달 27일께 유족과 우익인사 6000여명을 거느리고 사이판을 방문해 ‘반자이 절벽’에서 대규모 위령제를 지낸다.

이에 대해 양 대표는 동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종전 60주년을 기념한다면서 반자이 절벽을 찾는 것은 피해 국가를 무시하는 역사 모독행위”라며 “국민이 힘을 합쳐 일왕의 사이판 방문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대표는 “일왕의 이번 방문에는 세계 유수의 언론사 취재진까지 동행 한다”며 “전 세계를 향해 ‘일본은 전쟁의 피해자요, 희생자’라고 광고하려는 속셈”이라고 비난했다.

1944년 7월8일 미군의 상륙을 두려워한 일본군 지휘부는 옥쇄(玉碎 :명예와 충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침)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수천 명의 일본 군인과 민간인은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일본군의 총칼 아래 수많은 한국인들도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이판에는 약 3000여명의 한국인들이 강제로 끌려와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유골조차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

양 대표는 “일본은 지난 52년부터 남양군도에서 124만 구의 유골을 발굴해 자기네 땅으로 가져가 한데 모아 매장했다”며 “일본 땅에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이 묻혀 있는지 파악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일본이 진정으로 전쟁 희생자의 슬픔을 위로하려면 한국인 피해자들의 위령제를 먼저 지내야 한다”며 “일왕과 고이즈미 총리, 이시하라 도쿄 지사는 유족들에게 직접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태평양전쟁유족회는 사이판 교민회와 활빈단,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 등과 함께 일왕의 사이판 방문 일정에 맞춰 반자이 절벽에서 항의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일왕 사이판 위령방문 반대’ 서명운동과 일본 UN상임이사국 진출 저지,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전개한다.

활빈단(단장 홍정식)은 25일 성명서를 내고 “일왕의 사이판 위령제는 피해 국민들에 대한 잔악한 모독”이라며 “일왕을 부추겨 군국주의의 부활을 도모하는 일본 극우수뇌부는 속죄의 의미로 반자이 절벽에서 투신 자폭하는 행사를 벌여주길 바란다”고 성토했다.

외교통상부 이규형(李揆亨) 대변인은 27일 정부대책을 묻는 질문에 “아직 사안에 대해 파악이 안돼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일왕의 사이판 방문 추진은 지난 2월부터 국내·외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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