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TV는 테러와 전쟁중”…매일 유가족 출연해 눈물호소

  • 입력 2005년 3월 3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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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TV 화면에서는 처참하게 파괴된 이슬람 성지의 모습들이 흘러간다. 참혹하게 살해된 시신들과 울부짖는 여인들의 모습이 교차한다. 이어 분노한 유족들 앞에서 잘못을 참회하고 용서를 비는 테러범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이라크 국영 TV방송사 알 이라키아가 요즘 방영하고 있는 ‘정의의 손에 잡힌 테러리즘’이라는 제목의 다큐 시리즈 장면이다.

시리즈는 수니파와 시아파를 위해 조금씩 다른 내용으로 만들어져 매일 점심과 저녁 시간대에 1시간씩 방영된다.

2월 초에는 테러범들의 고백만 내보냈다. 그러다 최근엔 호소력이 강한 반(反)테러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시리즈는 대번에 이라크 주민들의 인기를 사로잡았다.

밖에 나다니기도 위험하고 특별한 오락거리도 없는 이라크에서는 TV 시청률이 매우 높다.

화면에 등장한 테러범들은 담력을 키우기 위해 짐승을 대상으로 예행연습을 한 이야기, 치안불안을 목적으로 부녀자들을 강간하던 이야기, 시리아와 파키스탄에서 훈련받던 이야기 등 다양한 증언을 한다.

이라크 보안군 지휘관들이 나와서는 “우리는 팔루자에서 미군이 했던 것처럼 도시를 파괴하지 않고도 치안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시청자들을 안심시킨다.

또 성전(聖戰)을 내세우는 테러범들이 실상은 테러의 대가로 월 200∼3만 달러의 수고비를 받는 용병에 불과하다는 내용도 강조한다.

시리즈는 혼란된 민심을 수습하고 테러범들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주민들의 제보가 활발해지도록 만드는 효과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 물론 치안을 위한 과도정부와 보안군의 활동에 대한 홍보성격도 짙다.

그래도 시리즈의 시청률이 치솟자 테러범들은 내용이 전부 조작됐다는 소문을 퍼뜨리며 인기를 끌어내리는 데 급급하다.

방송 관계자들에 대한 살해 위협도 잇따른다. 실제 지난달 20일 모술에서 알 이라키아TV 여기자 라에다 와잔 씨가 납치된 뒤 ‘배반자를 처단한다’는 내용의 쪽지와 함께 시신으로 발견됐다.

같은 방송사에서 뉴스를 담당하고 있는 커렘 후마디 씨는 “우리는 어떠한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을 선서했다”며 “시리즈 제작은 조국을 위한 우리의 도덕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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