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통령, 美 핵개발 중단압력에 보복 천명

  • 입력 2005년 2월 11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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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이슬람 혁명 26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이란 수도 테헤란의 아자디 광장.

눈발이 매섭게 날리는 강추위 속에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해 운집했다.

하타미 대통령은 “미국의 핵개발 중단 위협에 이란은 일치단결해 저항할 것”이라며 “침략자들은 불타는 지옥을 만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후 기념행사장은 반미 궐기대회장으로 돌변했다.

▽이란식 ‘불바다’ 발언=하타미 대통령은 대표적인 온건파 지도자로 친(親)서방 개혁을 추진해왔다. 따라서 이날 하타미 대통령이 쏟아낸 초강경 발언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는 연설에서 “침략자들이 이란에 발을 붙이도록 허용할 것이냐”고 반문한 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란은 침략자들에게 불타는 지옥으로 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중들은 곧바로 “미국에 죽음을…”이란 반미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국영 미디어들은 이날 아침부터 테헤란 시민들에게 “미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아자디 광장으로 모이자”고 방송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의료팀이 대기했고 따뜻한 음식과 음료수도 무료로 제공됐다.

하타미 대통령은 1997년 취임 당시 미국을 공개적으로 칭찬하며 외교관계 재개를 모색했다. 2003년 9월 이란 핵무기 개발 의혹을 부인하며 서구에 화해 손짓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우라늄 농축 중단 불가’ 방침을 밝히면서 강경 방침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이슬람 혁명 기념행사를 보기 드문 대규모 집회로 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개혁파에 대한 국민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보수 세력을 집결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6월 17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AFP통신은 11일 “이란 핵에 대한 국제적인 압박이 강해지자 이란인들이 이슬람 혁명 26주년을 맞아 단결된 힘을 보여주려 했다”고 분석했다.

▽기름 부은 라이스 국무장관=이번 연설에 모인 청중들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형상 뿐 아니라 실물 크기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우스꽝스런 형상을 들고 나와 적개심을 드러냈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10일 룩셈부르크에서 유럽연합(EU) 관계자들과 회담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테러 지원과 핵 야욕, 민주주의 결핍을 공개 비난했다. 앞서 9일에는 이란과 핵 협상을 벌이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을 촉구하고, 이란이 의심스러운 핵 계획을 중단하지 않으면 제재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란에 대해 무력사용을 암시한 부시 대통령에 이어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라이스 국무장관이 이란인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 됐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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