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정상회담]北核해결 ‘단호한 의지’인가

  • 입력 2004년 11월 21일 18시 36분


《“역대 한미정상회담 중에서 가장 ‘출중한’ 결과가 나왔다.” 권진호(權鎭鎬)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은 20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을 이처럼 평가했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하기엔 이르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이번 회담의 의미와 전망을 △북핵 문제의 중요 이슈화 △북핵 이분법 논란 △한국의 주도적 역할론 등 3개 분야로 나눠 점검해 봤다.》

▼Vital Issue(중요한 이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 핵문제를 미국 정부의 ‘바이털 이슈(vital issue)’라고 표현한 것은 이 문제를 집권 2기에 해결해야 할 역점 과제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부시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칠레 산티아고에 온 중국 일본 러시아 정상들과 잇따라 만나 ‘북핵 불용(不容)’을 앞세워 일치단결을 촉구한 데서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부시 대통령의 의지가 느껴진다.

북핵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앞으로 부시 행정부가 외교적으로 좀 더 다양한 대북정책을 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부시 행정부도 북핵 문제를 겉돌기만 하는 6자회담 구도에 마냥 내버려 둘 만큼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북핵 해결을 선결과제로 삼은 이상 평화적 외교적 방법과 함께 대북 제재 가능성까지 깔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 워싱턴에서는 아직 미국 대북정책 변화의 조짐이나 미국이 북한 문제를 제1과제로 올려놓을 것이라는 기류는 뚜렷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백악관 고위관계자는 17일 워싱턴을 방문한 열린우리당 정의용(鄭義溶), 한나라당 박진(朴振) 의원을 만나 “공화당의 대북정책은 바뀔 가능성이 없다”고 못 박았다.

다른 워싱턴 외교소식통 역시 “지금은 미국이 6월 제시한 미국식 해법에 대해 북한이 반응을 보여야 할 때”라며 “북한이 꿈쩍도 않는 상황에서 미국에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또다시 내놓으라는 요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이 수렁에 빠진 이라크와 긴급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란 핵 문제를 제쳐 놓고 북한을 최우선 순위로 놓을 것으로 전망하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는 듯하다.

결국 ‘바이털 이슈’라는 표현에는 북핵 해결을 위한 미국의 ‘의지’가 담겨 있지만 ‘실천’에 나서기에는 아직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게 지배적 해석이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이분법 말라▼

‘대북 제재는 곤란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로스앤젤레스발 메시지에 대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평화적 외교적 해결’로 화답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미국 정부의 북핵 문제에 관한 시각을 너무 단순화시켜서 보는 잘못된 시각이 있다”고 뼈있는 말도 했다. 평화적 방법이냐, 물리적 제재냐는 이분법적 시각을 갖고 부시 행정부를 강경파로만 몰아세우지 말라는 얘기였다.

부시 대통령의 ‘이분법 곤란’ 발언은 물론 한국을 염두에 둔 것이며, 백악관 참모진의 일관된 기류를 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북핵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전술적으로 ‘대북 압박’ 카드를 쓸 수 있는데도 이를 무조건 사태를 악화시키는 카드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최근 열린우리당 정의용,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잇따라 만난 백악관 고위관계자와 백악관 아시아담당 국장으로 내정된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한을 포용하지 않는다고,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한다는 식으로 선전하는 이분법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는 후문이다.

특히 한 고위 당국자는 두 의원에게 “한국에서 모 신문의 이와 같은 이분법적 접근이 문제이며, 그 신문은 이분법으로 단순화시킨 뒤 한국의 (반미)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앞서 로스앤젤레스 연설에서 “대북 제재는 협상전략으로서의 유용성도 없다”고 못 박은 바 있다.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미간 긴밀한 공조’를 다짐했지만 아직도 북핵 해결의 구체적 방법에 있어서는 한미간 이견이 잠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산티아고=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한국이 주도▼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도 북한을 대화상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역설하는 등 대북 접근 방법에 있어 유연성을 강조했다. 정부의 한 핵심당국자는 “북한도 6자회담의 참가국인 만큼 북한 지도부를 자극하거나 한반도 상황을 불안하게 만드는 발언은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점에 양국 정상이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한국이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담 중에 ‘주도적’이란 표현을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자연스럽게 강조되는 분위기였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그래서 대북특사 파견이나 남북정상회담 추진 등 남북간 직접 대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흘러나온다. 그러나 정부는 그런 주도적 역할도 한미 양국 정상이 합의한 ‘6자회담 틀 내’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에 대해 “6자회담 틀 내에서 한국이 좀더 과감하고 주도적으로 (북핵 해법에 대한) 제안도 하고 조율도 해나갈 것이란 뜻”이라고 말했다.

외교부의 고위당국자도 21일 비공식 브리핑에서 “남북간의 별도 채널에서도 북핵 문제가 거론되고 (북한을) 설득할 수 있지만 그 채널이 협상을 위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노 대통령의 13일 로스앤젤레스 북핵 관련 발언 이후 “한미간에 북핵 폐기라는 전략은 같지만 그를 위한 전술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한미간 전술 차이’라는 틈새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나름대로 찾아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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