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감이 앞선다” 옐리네크 수상 소식에 뜻밖 반응

  • 입력 2004년 10월 7일 2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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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역사상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로 선정된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7일 빈의 자택에서 수상 소식을 들은 뒤 “평화로운 마음보다 절망감이 앞선다. …나는 사람 앞에 나서는 일이 맞지 않다”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작품 속에서 뒤틀린 풍자를 즐겨 사용하기로 유명한 그는 “돈이 많으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으니 상금이나 즐겁게 썼으면 좋겠다”며 특유의 냉소적 표현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지병 때문에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옐리네크씨는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마르크주 뮈르츠추슐라크에서 출생해 빈에서 성장했다. 명문 빈 국립음대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전공하고 연극학과 미술사를 공부한 그는 1967년 첫 시집 ‘리자의 그림자(Lisas Schatten)’를 출간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성향은 1960년대 후반 유럽을 휩쓴 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으면서 1970년 풍자적인 소설 ‘우리들은 미끼새들이다’를 시작으로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오스트리아의 암울한 면을 부각시켜 엽기적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다. 특히 노골적인 성 묘사와 사회 고발적인 특징은 1980년 ‘멋진, 멋진 시대’와 1983년 ‘피아노 치는 여자’로 이어졌다.

오스트리아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1991년 의견 차이로 탈당하기도 한 그가 오스트리아의 정치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것은 1996년. 이 해 극우파 자유당 당수 외르크 하이더가 선거전에서 그를 비윤리적 작가라고 공격하자 그는 진보주의자들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이에 앞서 급진적 페미니즘 성향 때문에 극장에서 희곡 공연을 거부당하는 등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외면당하기도 했다.

그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오스트리아에서는 진보파를 중심으로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최근 9년 동안 8명의 유럽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해 올해는 유럽 작가의 수상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점쳐져 왔다. 특히 1999년 독일 소설가 귄터 그라스의 수상 이후 5년 만에 다시 독일어권 작가에게 주어지는 영예인 데다 8년 만의 여성작가 수상이어서 ‘뜻밖의 소식’이라는 반응이다.

사회당 소속인 하인츠 피셔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마음속 깊이 축하한다. 오스트리아 문학의 영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극우파의 국가주의 성향에 반대 입장을 보여온 옐리네크씨는 “나의 수상이 오스트리아의 단춧구멍에 끼워진 꽃으로 해석되지 않길 바란다”며 ‘국가적 영예’에 거리를 두었다.

1974년 과학자 고트프리트 휭스베르크와 결혼한 옐리네크씨는 빈과 독일 뮌헨을 오가며 살고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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