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세계의 비경]<7>프랑스 샤블리 포도밭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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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대표적인 화이트와인 산지인 부르고뉴 지방 샤블리의 장마크 브로캬르 포도원. 왼쪽은 13세기에 지은 생트클레르 성당이다. 부르고뉴샤블리(프랑스)=조성하기자
프랑스의 대표적인 화이트와인 산지인 부르고뉴 지방 샤블리의 장마크 브로캬르 포도원. 왼쪽은 13세기에 지은 생트클레르 성당이다. 부르고뉴샤블리(프랑스)=조성하기자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기름진 음식을 먹는 프랑스인이지만 질병은 많지 않다는 것을 말함)와 함께 레드와인이 심장질환을 억제한다는 건강적 측면도 기여했지만 음식과의 조화가 필수인 와인 자체가 갖는 ‘웰빙적 분위기’가 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의 숱한 술 가운데 물을 사용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종류인 와인. 포도즙을 발효시켜 만들기 때문에 와인 맛은 물맛이 아니라 포도 맛에 의해 좌우된다. 포도 맛이 포도원의 토양에 달려 있다는 것은 상식. 그러니만큼 와인애호가들이 포도원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결코 극성이나 호사나 사치가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찾아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샤블리(Chablis). 샤블리는 지명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생산되는 화이트와인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와인애호가들이 기억하는 샤블리는 이렇다. 화이트와인 가운데서도 드라이한 맛을 내는 대표 품종 포도인 샤르도네(영어로는 샤도네이)의 원산지, 전 세계에서 샤르도네 품종 포도로 생산된 와인 가운데 명품 등등.

그곳은 파리에서 고속도로(A6)로 동남쪽으로 2시간, 180km쯤 떨어진 한가로운 시골이다. 오르내림이 부드러운 완만한 구릉의 초원이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연둣빛 땅. 샤블리 타운은 스랭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완만한 계곡의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포도밭은 개울에 가깝다고 해야 할 좁은 강 양편으로 너울처럼 퍼져 나가는 파상형의 구릉지대 경사면을 온통 뒤덮고 있다.

이곳은 프랑스의 3대 와인산지(론 보르도) 가운데 하나인 부르고뉴 지방의 가장 북쪽. 부르고뉴에서도 파리와 가장 가깝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르고뉴의 골든게이트’라고 부른다. 부르고뉴 최고의 와인산지인 코트도르(황금의 언덕)에 비겨서 붙여준 말인 듯하다. 부르고뉴에서 ‘골드’는 샤르도네로 빚은 화이트와인에 나타나는 연둣빛 감도는 금빛을 말한다.

샤블리 타운에 들어서면 누구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난 여행자 같은 착각에 빠진다. 13∼17세기 풍의 고색창연한 건물 일색이기 때문. 새 건물이라고는 1940년 독일의 공습으로 파괴돼 다시 지은 주택뿐. 온 동네가 중세풍이다. 주민도 2600명뿐, 그나마도 각각의 포도밭 한가운데 자리 잡은 19개 마을(코뮌)에 분산돼 이 중세풍의 타운은 온종일 사람 기척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고즈넉하고 한가롭다.

타운을 벗어나면 푸른 하늘과 함께 온통 시야를 꽉 채우는 드넓은 구릉의 초원과 포도밭. 일렬로 심긴 포도나무는 푸른 잎을 드리우고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그 포도밭은 토질, 경사도, 방향, 미세기후에 따라 네 가지로 나뉘며 여기서 딴 포도로 만든 와인 역시 샤블리에서는 포도밭의 등급을 따른다.

이 포도밭에서 놀란 게 두 가지 있다. 포도나무는 과실의 당도를 높이기 위해 배수가 잘되는 석회암 토질에 심는다고는 들었지만 그 땅이 이렇듯 척박한 줄은 몰랐다. 회백색의 석회암 돌덩이가 반쯤 섞인 돌밭이다. 그런 땅에서 저리도 탐스러운 열매가 맺힌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질 않았다.

또 하나는 샤블리 와인 맛의 핵심이 이 토양이라는 것. 티에리 아믈랭(부르고뉴 포도주 생산자연합회 샤블리 위원장)은 “샤블리 와인이 다른 곳의 와인과 구별되는 것은 바로 이 샤블리에서만 볼 수 있는 테루아르(Terroir·토양)”라면서 “테루아르란 단순히 토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후, 흙과 돌 성분은 물론 포도를 가꾸는 사람의 영혼까지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샤블리의 일부 포도밭에서 발견된 ‘키메리지엔’이라는 선쥐라기(중생대)시대의 지층은 최고급 와인(부르고뉴가 정한 4개 등급 가운데 최고인 ‘그랑크뤼’)의 텃밭이고 포도원 곳곳에서 발견되는 굴과 암모나이트 화석이 박힌 석회암은 샤블리 와인만의 독특한 미네랄 맛과 향을 내는 ‘테루아르’라는 설명이다.

저녁놀 질 즈음. 마을 앞의 그랑크뤼 포도원 언덕을 오른다. 한낮 태양 아래 달궈진 돌밭의 뜨거운 열기를 즐기고 있는 포도나무 밭 샛길로 훠이훠이 걸으며 자연에 깃든 평안함과 한가로움을 모처럼 진하게 느낀다. 포도밭 여행의 즐거움은 바로 이런 것이려니. 하나 더 있다면 포도를 키우는 정성으로, 와인의 미묘한 맛을 감별해내는 뛰어난 감각으로 소스를 만들고 요리하는, 부르고뉴의 멋진 음식을 맛보는 식도락. 오늘은 샤블리 타운의 스랭강을 가로질러 지은 옛 물레방앗간 식당 ‘비외물랭’이 어떨지.

샤블리=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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