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이라크파견]예고된 감축… 정부 “아니다”만 되풀이

  • 입력 2004년 5월 17일 18시 47분


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의 이라크 파견이 한미동맹관계에 근본적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하는 증거라고 지적하고 있다.

▽끊이지 않았던 ‘주한미군 감축 징후’=미국이 ‘마지막 냉전 지대’인 한반도 주둔 미군을 빼가는 문제를 한국측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상황은 미측이 ‘주한미군 감축’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왔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부 장관은 2003년 2월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최고위원 등 노무현(盧武鉉) 당선자 대미 특사단에 “한국 정부의 동의를 전제로 주한미군의 지상군 병력을 단계적으로 감축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미국측의 잇따른 사전경고는 “사실이 아니다”는 정부의 부인 속에 ‘미국 내 소수 강경파의 목소리’로 평가절하돼 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한미관계 전문가는 “노무현 정권 출범을 전후해 발생한 촛불시위 등 반미분위기와 정권 내부의 자주외교 성향 때문에 미국측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불신감이 컸다. 이로 인해 대미외교 채널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미 정부쪽의 정확한 기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의 이중적 대응=주한미군 감축 문제에 관한 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말만 있고 행동은 없는 NATO(No Action Talk Only)’란 비판이 정치권에서 제기돼왔다.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부터 ‘자주국방’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부 당국은 ‘미국의 국방전략 변화에 따른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했을 뿐, 구체적 대비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유흥수(柳興洙) 의원이 ‘동두천 일대 2사단의 이라크 이전설’에 대해 물었을 때도 당시 윤영관(尹永寬) 외교통상부 장관은 “미국 군사당국이 정식으로 부정했다”고 이를 일축했다.

▽주한미군 추가 감축 가능성은?=정부 일각에선 벌써부터 “이번 일을 계기로 주한미군의 감축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주한미군에 정통한 일부 소식통들도 “주한미군 3만7000명을 순차적으로 감축해 약 2만5000명 선으로 유지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주한미군 감축은 2007년경부터 본격화할 주한미군 재배치와 상당한 연관이 있다. 한국 정부는 ‘용산기지 이전→주한미군 2사단의 한강 이남 재배치→주한미군 감축 논의’의 시간표를 정했으나, 주한미군의 이라크 파견으로 자칫 그 시간표가 거꾸로 진행되는 상황에 부딪치게 됐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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