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더타임스 파렐기자 생사 넘나든 8시간 억류記

  • 입력 2004년 4월 9일 18시 35분


스티븐 파렐 기자를 ‘위기’에서 구한 스쿠버 다이버(eurodivers) 자격증. 파렐 기자는 7년 전에 딴 이 자격증으로 군인이 아닌 민간인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 사진제공 더 타임스
스티븐 파렐 기자를 ‘위기’에서 구한 스쿠버 다이버(eurodivers) 자격증. 파렐 기자는 7년 전에 딴 이 자격증으로 군인이 아닌 민간인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 사진제공 더 타임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의 스티븐 파렐 기자가 6일 이라크 팔루자 인근에서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와 취재하던 중 무장세력에 납치됐다가 풀려났다. 8시간 동안 ‘반미 저항세력’에 억류됐던 그는 8일자 더 타임스에 급박했던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다음은 파렐 기자의 억류기.》

바그다드에서 20마일(32km) 정도 떨어진 곳을 지날 때 총알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복면을 한 수십 명의 무장괴한 중 몇 명이 우리에게 칼라슈니코프 소총을 발사했고, 일부는 로켓추진 총유탄(RPG)을 겨냥했다.

지그재그로 달리며 빠져나가려고 애썼지만, 총알은 우리가 탄 3t짜리 방탄 메르세데스 차량의 타이어에 명중했다. TV에서 미국인의 시체가 끔찍하게 훼손된 것을 본 지 6일 만이었다. 이후 8시간 동안, 우리는 서구 사회가 ‘테러리스트’로 명명한 집단, 도둑과 이상주의자, 애국자와 바트당원, 이슬람주의자와 총잡이들이 뒤섞인 집단의 끈질긴 신문을 받았다.

차에서 내리자 무장괴한들이 서류, 현금, 신분증 등을 빼앗았다. 미국인 프리랜서 여기자 올리 핼퍼린이 택시로 끌려갔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재빨리 핼퍼린의 곁에 탔다. 괴한들은 소총으로 내 머리를 겨냥했고, 오른쪽 귀에 칼을 갖다댔다. 아랍어가 들렸다. 핼퍼린에게 하는 말이었다.

“너는 여자니까 죽이지 않겠다. 하지만 네 친구는 끝장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하피(기자)’라고 외쳤다. 이윽고 ‘무법지대’에 도착했다. 미군도 중화기로 무장하지 않고는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다. 도처에 RPG로 무장한 복면의 사내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괴한들은 무크타르(마을 장로)의 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수니파의 집이었다. 우리를 붙잡은 것은 시아파였다. 아부 무자히드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무자헤딘 전사가 나타났다. 그는 대뜸 “작년에 미국인들이 이렇게 만들었다”며 잘려 나간 오른쪽 팔을 내보였다. 숨이 턱 막혔다.

“왜 여기에 왔나? 누구인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우리는 기자다. 이라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리기 위해 왔다. 우리가 여기 오지 않았다면 세계는 진실을 알지 못하게 된다.”

같은 질문과 대답이 8시간 동안 계속됐다. 무자헤딘은 ‘미군이냐, 기자냐’를 머릿속에서 저울질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말문을 열었다.

“부시에게 물어봐 달라. 미국이 이라크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왜 미군이 이라크 국민을 죽이는지 알고 싶다. 민주주의가 사람을 죽이는 것인가?”

그의 말이 이어졌다. “수니도 시아도 없다. 모두 무슬림이다.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미군은) 거대한 로켓을 발사하는가?”

잠시 후 그가 떠나자 날카롭던 분위기가 수그러들었다. 한 이라크인이 말을 붙였다.

“처음에 당신들을 공격한 것은 알리바바(도적)들이다. 다음에 온 사람들은 무자헤딘이다. 무크타르는 당신들이 기자라고 설명해 줬다. 나는 아랍인이다. 당신들의 소지품을 찾아주겠다. 당신들은 우리 손님이다.”

상황은 나아졌지만 완전히 풀려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신문이 이어졌다. 내 머리모양이 문제였다.

“당신은 머리를 밀었다. 그들(팔루자에서 살해된 미국인)도 똑같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이었다.”

“나는 민간인이고 기자다. 단지 대머리일 뿐이다.”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그들이 가져온 내 소지품 속에서 스쿠버 다이버 자격증이 떨어졌다.

“봐라, 군인이 아니다. 대머리일 뿐이다.”

냉랭한 분위기를 깨고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현금 1만5000달러와 몇 가지를 제외한 소지품을 돌려받았다. 한 젊은이가 우리를 바그다드까지 태워 주겠다고 나섰다.

“이라크인 대부분은 지난 정권에 많은 고통을 겪었다. 미국이 후세인을 축출해 이라크를 해방했지만, 이제는 미국이 문제다.”

그 청년은 정중히 사과하며 미군이 들어온 이후 길거리에 수많은 강도가 날뛰고 있다며 덧붙였다.

“우리가 데려다 줘야 한다. 이라크는 너무 위험하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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