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 암살 이후]부시 주도 ‘평화 로드맵’ 뿌리째 흔들

  • 입력 2004년 3월 23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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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복수!’ 23일 가자지구 시가지. 하마스를 상징하는 녹색 깃발에 덮인 이 단체 창설자 아메드 야신의 운구 행렬을 따르던 팔레스타인인들은 일제히 총을 발사하며 구호를 외쳤다. 그의 피살 직후 자치지역인 가자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에는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이 이어졌고 유혈충돌이 잇따르고 있다. 중동지역에서는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이번 사태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미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추진해온 ‘중동 민주화 구상’도 기로에 서게 됐다.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폭탄테러에 이은 야신 피살로 세계경제 또한 불안한 상황이다. 요동치는 중동. ‘피의 복수’는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아메드 야신 피살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는 첨예한 대치 상황을 벌이고 있다. 특히 팔레스타인과 아랍 국가들의 분노가 확산되면서 국제사회가 1993년 오슬로협정 이후 꾸준히 모색해온 중동평화 구축 노력이 완전히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제5차 중동전쟁으로 비화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중동정세 어디로=‘순교자’라는 이름을 얻은 야신의 시신 운구 행렬에 참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주민 20만명이 22일 가자시에 모여들었다. 오슬로협정 체결 후 최대 인파다.

레바논 무장단체인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야신 암살에 대해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한 뒤 레바논의 체바 농장지대 내 이스라엘 진지를 포격했다.

이번 사태는 중동 지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테러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알 카에다는 이슬람 운동단체 웹사이트(www.al-ansar.biz)에 공개한 성명에서 “야신의 피는 헛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알 마스리 여단이 미국과 그 우방들을 공격함으로써 야신의 죽음에 복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내분=야신에 대한 공격문제를 두고 이스라엘 정부 내부에서도 큰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팔레스타인의 보복 공격 및 정세 변화에 따라서는 이번 결정을 둘러싼 이스라엘 정부내 강온파의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리엘 샤론 총리 내각이 공격 작전을 승인했을 때 대부분은 찬성했지만 반대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이스라엘 내무장관 아브라함 포라즈는 “이번 작전은 이스라엘로서는 효용성보다는 피해를 가져오는 작전이 될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또 이스라엘 국내보안국 신베스의 수장인 아비 디히터는 “존경받는 지도자를 살해할 경우 이스라엘에 득이 되기보다는 해를 끼치게 될 것”이라며 야신 공격에 반대했다고 이스라엘 군 라디오 방송이 22일 보도했다. 디히터는 하마스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지도부 전체가 해체될 때를 기다리는 편이 나았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기로에 선 미국의 중동 민주화 구상=이스라엘 강경파의 야신 공격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중동 민주화 구상을 송두리째 흔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동 민주화 구상은 사실상 부시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개입해 만든 작품. 따라서 중동문제가 악화된다면 가뜩이나 이라크사태 및 대테러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시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미국은 일단 발등의 불을 끈 뒤 본격적인 개입에 나설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를 위한 1차적인 작업이 바로 미국이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미국 개입 의혹이 불거질 경우 미국의 중동지역 안정화 구상은 그야말로 물거품이 될 뿐더러 중재자의 입지마저 흔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싱턴 싱크탱크인 미국평화연구소(USIP)의 스티븐 리스킨은 “미국이 그동안 이스라엘의 강경 행동을 지지했다는 아랍권의 폭넓은 인식으로 인해 미국 주도의 중동평화 ‘로드맵’과 역내 지역에 대한 민주주의 이식 노력이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가자·예루살렘·워싱턴=AP 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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