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 “아프간 침공은 잘못”…“中東테러리즘 씨앗”

  • 입력 2004년 2월 15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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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은 옛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지 15년이 되는 날. 소련은 1978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전격 침공해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친소 정권을 수립했으나 이슬람반군의 저항에 부닥쳐 고전하다가 1989년 2월 15일 철수했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주요 도시에서는 15일 기념행사와 전몰장병 추모식이 열렸다.

당시 주요 지도자들은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실수”라는 반성론과 “당시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다”는 옹호론이 엇갈렸다.

▽“침공은 실수”=철수 명령을 내렸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회견에서 “외교정책을 이념적으로 접근했던 것이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뿌리 깊은 전통을 가진 나라에 외생적 사회모델(사회주의) 강제 이식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주둔 제40군 사령관으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철수 작전을 지휘했던 보리스 그로모프 모스크바 주지사도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아프가니스탄뿐 아니라 중동 전체에 테러리즘이라는 벌집을 건드린 큰 실수였다”고 지적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자극받은 이슬람 세계 전역의 전사들이 소련에 대한 지하드(성전)에 나서면서 탈레반을 비롯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결집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사태 이후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의 원죄가 옛 소련에 있다는 반성이다.

옛 소련은 10년 동안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매년 약 50억루블(당시 환율로 50억달러)의 전비를 쓰느라 경제난이 가중되고 1만5000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보았다.

▽“어쩔 수 없었다”=철수에 반대했던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당시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의장은 “중동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소련군 진주는 불가피했으며 소련군은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했다”며 침공을 옹호했다. 그는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을 포기하는 바람에 나지불라 공산정권이 붕괴하면서 내전과 혼란이 지금까지 계속돼 오고 있다”고 비난했다.

바딤 키르피첸코 당시 KGB 부의장도 “오늘날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과격 테러가 나타난 책임은 옛 소련이 아닌 미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미국은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이슬람 무장세력인 무자헤딘을 지원했으며 이들이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이슬람의 이름으로 증오심과 공포를 퍼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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