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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2월 13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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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을 버리고 ‘당근’만 남긴 듯 보이는 미국이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계산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3일 보도했다.
북한도 리비아의 예를 따르라고 공언한 만큼 보상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강경 외교정책의 일관성을 해치는 것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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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사진)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떠오르고 있는 세이프 알이슬람 카다피는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WMD 포기 후 미국과 영국이 경제자문, 외국인투자, 나아가 군사훈련과 안보까지 책임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일종의 압박이다. 그는 WMD 포기가 대가를 포함하는 일괄 거래라고 강조하며 “이란 시리아 북한 등이 리비아의 뒤를 따르게 하기 위해서는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저널이 인용한 미국의 고위 관리는 “무기를 포기하면 어떤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지 구체적으로 약속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백악관으로서는 리비아의 사례가 부시 대통령의 강경 외교정책의 승리이며 이라크전쟁의 효과라고 선전할 필요가 있다. 부시 대통령은 11일 “카다피 정권이 의무를 완수할 때가 되면 세계는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말해 현 단계에서 성급한 보상에 나설 뜻이 없음을 시사했다.
이 같은 백악관의 입장과 리비아의 높은 기대치는 크게 엇갈린다. 여기에는 리비아의 국내정치 사정도 작용하고 있다.
아들 카다피씨의 발언은 리비아 중산층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서방에서 교육받은 뒤 지도자급으로 부상한 중산층 전문직들은 세계화와 사기업 활동 등 서구적 세계관을 지지하고 있다.
31세의 아들 카다피씨 역시 영국 런던정치경제대에서 박사학위(국제지배체제 전공)를 받았고 슈크리 가님 총리는 미국에서 교육받은 경제학자다. 가님 총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활동하다 2년 전 리비아 경제 재건 임무를 맡고 귀국했다.
카다피 개혁의 씨앗은 이미 90년대 중반 동지적 유대감을 갖고 있던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나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가 백악관에 초청되고 홀로 고립되기 시작한 때부터 잉태됐다. 또 리비아의 거의 유일한 수출품인 원유 가격이 하락하고 부패와 인플레가 만연하면서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으로부터 개혁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결국 지난해 3월 이라크 전쟁 직전 리비아는 WMD 포기를 진지하게 모색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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