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공무원들 대통령-대미정책 폄하 私席발언…징계방침

  • 입력 2004년 1월 12일 18시 36분


청와대가 외교통상부의 일부 간부 및 직원들이 사석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정부의 대미정책을 폄하한 발언을 문제 삼아 이들을 징계조치하기로 해 파문이 일고 있다.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의 한 관계자는 12일 “외교부 간부와 직원들에 대한 내부조사 결과 3, 4명 정도가 회식자리를 포함해 여러 차례에 걸쳐 도저히 묵과하기 어려운 수준의 부적절한 발언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곧 비위 내용을 외교부에 통보해 이들을 인사 또는 징계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민정수석실이 확인한 이들의 발언 내용은 “노 대통령 지지자 중에는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총무의 발언은 맞는 말이 아니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젊은 보좌진은 탈레반 수준이며 노 대통령이 이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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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외교통상부 직원들의 ‘대통령 폄하 발언’에 대해 조사에 나선 가운데 12일 윤영관외교부장관(왼쪽)과 이종석 NSC사무차장(가운데),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회의장으로 들어서거나 점심 식사를 하러 외출하고 있다. -박경모기자

민정수석실은 최근 이 같은 발언 내용과 발언 일시 및 장소, 발언자 등이 상세하게 담긴 제보를 받고 외교부 북미국 1, 3과 직원 17명에 대해 조사를 벌여 왔다. 이들 중 일부 간부는 발언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수석실은 또 최근 NSC와 외교부간의 갈등을 다룬 6일자 국민일보 기사가 보도된 경위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 간부와 해당 기자간의 휴대전화 통화명세를 조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은 “통화명세를 조사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한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날 “청와대가 사석에서의 비판 발언까지 문제 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등을 긴급 소집해 이 문제를 따지기로 했다. 한나라당 박진(朴振) 대변인은 “한미동맹이 삐걱대는 것은 ‘민족공조’라는 편향된 코드만을 고집하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이라며 “그런데도 외교 공무원에게 실패한 대통령의 코드를 강요하고 색출 협박을 하는 것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김영환(金榮煥) 대변인도 “탈권위주의 수평적 리더십 창출을 참여정부의 성과로 자랑해 온 청와대가 사석에서의 비판적 의사 표현까지 범죄시하며 과민하게 대응하는 것은 사회 분위기 전체를 경직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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