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헌법안 합의 실패…정상회의 폐막

  • 입력 2003년 12월 14일 14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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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럽에 슬픈 날로 기록될 것이다."

12~1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끝난 뒤 안데르스 포흐 라스무센 스웨덴 총리는 이렇게 개탄했다.

EU 회원 15개국과 가입 예정 10개국 등 25개국 정상은 이번 회의에서 EU 헌법안 합의에 실패했다. 회의 결렬은 내년 5월 중 동 유럽 10개국의 가입으로 'EU 확대'의 거보를 내디디려는 EU에 짙은 분열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중(二重)다수결제'= 합의 실패의 주범이다. EU 헌법 초안은 확대 이후 EU의 의사결정 방식으로 25개 회원국 과반수 찬성에, 찬성국 인구가 전체 EU 인구의 60%를 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 바 '이중다수결' 제도.

인구가 많은 독일(8000만명)과 프랑스(6000만명) 등은 인구비례에 따라 영향력이 커지므로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스페인(3950만명)과 내년 5월 가입할 폴란드(3800만명)가 끝내 거부했다.

대신 두 나라는 2000년 니스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합의의 준수를 촉구했다. 당시 정상들은 EU의 의사결정 때 국가별 차등 투표권수를 부여키로 합의했다. 스페인과 폴란드는 29표를 인정받은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4대강국과 비슷한 27표를 부여받았다.

▽'이중속도(Two-Speed)론'= 회의 결렬에 따라 EU 확대와 이를 위한 EU 기구 개혁 등 전반적인 유럽통합 일정에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번지자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제시한 방안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유럽통합이 너무 느린 속도로 가고 있다"면서 "빠른 속도로 통합을 이끌어 갈 '선도그룹(pioneer group)' 창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U의 일부 국가 그룹이 먼저 안보 경제 법률 분야의 통합을 주도하겠다는 뜻. 달리 말하면 스페인 폴란드처럼 어깃장을 놓는 나라들을 EU 내에서 '왕따'시키겠다는 얘기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지난달 유럽통합 일정이 차질을 빚을 경우 프랑스 독일 두 나라만 국가연합을 이룰 수도 있다고 복선(伏線)을 깔았다.

이에 대해 스페인의 호세 마리아 아즈나르 총리는 "유럽을 분열시키려는 나라가 있다"며 프랑스를 비난했다.

이번 회의 결렬은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EU 내부 분열과 EU 성장안정협약의 유명무실화에 이어 EU의 미래에 깊은 회의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확대 이후 '거대 EU'의 비능률과 분열의 불안한 전조(前兆)를 드러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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