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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0월 27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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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울포위츠 부장관의 과거 행적을 돌아보면 이라크 저항세력이 그를 ‘목표’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이자 외교가인 울포위츠 부장관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국방차관이었다. 그는 1991년 걸프전 때 부시 당시 대통령이 바그다드를 점령하지 않은 것을 개탄했다. 딕 체니 당시 미 국방장관(현 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울포위츠 부장관은 국방부에서 물러나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SAIS) 원장으로 지내면서도 ‘바그다드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았다. ‘부시-메이드 인 텍사스’라는 책을 쓴 마이클 린드 뉴아메리칸 파운데이션 선임연구원은 “울포위츠와 그의 신보수주의 동지들은 미국이 바그다드를 점령하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는 주장을 펴면서 1990년대를 보냈다”고 했을 정도.
울포위츠 부장관은 또 98년 이라크 문제로 소집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이라크 민중봉기를 유도할 남부 이라크 자유지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울포위츠와 그의 동료들은 이런 생각을 ‘직면한 위험(present dangers)-미국의 외교 국방정책의 위기와 기회’로 정리했고, 이는 아들 부시 대통령의 ‘부시 독트린’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신보수주의 비판론자들은 울포위츠-부시 독트린의 세 기둥을 일방주의와 선제공격, 그리고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같은 이스라엘 우파와의 외교적 제휴라고 단정하고 있다.
아들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국방부에 복귀해 자신의 생각을 실천해 갈 무렵인 2002년 9월. 뉴욕 타임스 매거진은 울포위츠 부장관의 정치적 궤적을 이렇게 묘사했다. “울포위츠 비판자들은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그가 지나치게 이스라엘에 편향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매거진은 그러면서 그가 10대 때 부친의 안식년 학기를 이스라엘에서 보냈다는 사실과 그의 누이가 이스라엘 사람과 결혼했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창혁기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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