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마하티르 면전서 공박

  • 입력 2003년 10월 21일 02시 02분


기독교적 가치관을 중시해 온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가한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를 면전에서 비난했다. 마하티르 총리가 4일 전 이슬람회의기구(OIC) 정상회의에서 유대인들을 맹비난한 것을 도마에 올린 것이다.

AP통신은 마하티르 총리가 부시 대통령에게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응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세계 최강국 정상과의 확전을 우려해 더 이상의 말은 아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작심한 듯 보였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오전 기자들에게 부시 대통령의 비난 발언을 예고했고, 부시 대통령이 마하티르 총리를 만난 뒤에는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이 상세한 브리핑까지 덧붙였다.

이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장 한쪽에서 마하티르 총리와 따로 만나 “유대인 관련 발언은 분열을 조장하는 것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공박했다. 그는 더 나아가 “그 발언은 나의 믿음에도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1개국 정상이 모인 이번 APEC 정상회의는 마하티르 총리에게는 22년간의 지도자 생활을 접는 마지막 정상 외교무대. 더욱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대놓고 상대국 정상의 과거 발언을 비난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마하티르 총리는 16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OIC 정상회의 개막연설에서 “유럽인들이 유대인 1200만명 중 600만명을 죽였으나 오늘날 유대인들이 세계를 대리 지배하고 있다”면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싸우고 죽도록 만들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그의 발언은 서방세계의 격렬한 비난을 불러왔지만 당시 회의에 참석한 이슬람권 대표들은 기립박수로 환호했다.

사이드하미드 알바르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회담 직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에게 OIC 정상회의 발언의 진의를 재차 해명했다. 그러나 파월 장관은 “유대인 관련 발언이 연설을 망쳤다”고 지적했다.

말레이시아는 2002년 여름까지 미국의 대테러전쟁을 적극 지지했지만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마하티르 총리가 부시 대통령을 맹비난해 사이가 벌어졌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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