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후 여러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52년 앵발리드에 입원한 뒤 숨을 거둘 때까지 51년을 이곳 병상에서 보냈다. 머나먼 이국의 전쟁터에서 입은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산 것.
53년 10월 상이용사로 전역했으며 프랑스 최고훈장인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비롯해 무공훈장, 해외참전 십자훈장 등 훈장 4개와 표창 7개를 받았다. 하지만 참전의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총상으로 결국 좌반신을 쓰지 못하게 됐고 말도 어눌해졌다. 96년에는 당뇨합병증으로 양쪽 발목까지 잘라야 했다. 결혼도 하지 못한 데다 최근 가까운 친척이 모두 세상을 떠나 그의 말년은 더욱 외로웠다.
한국 정부는 그를 위로하기 위해 95년 11월 서울로 초청했다. 당시 피우에씨는 휠체어를 탄 채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등을 둘러보며 말없이 눈물지었다고 한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한인회, 참전협회도 96년부터 3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그를 위로 방문했다. 한국대사관과 한인회는 지난해 2월 앵발리드 입원 50주년을 맞아 그의 쾌유를 비는 작은 행사를 갖기도 했다.
프랑스는 6·25전쟁에 3461명을 파병했으며 이 가운데 26명이 전사했고 1350명이 부상했다.
피우에씨가 반세기 이상 살았던 앵발리드는 루이14세가 1671년 상이용사를 위해 지은 국립병원이다.
현재는 군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당초 건립 취지를 살려 아직도 상이용사들을 위해 100여개의 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유해도 이곳에 안치돼 있다.
피우에씨의 영결식은 27일 앵발리드 내 생루이 교회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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