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下>美-中 ‘위안화 싸움’ 한국에 불똥 우려

  • 입력 2003년 7월 23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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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환율전쟁’ 조짐이 국내외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중국 위안화 평가절상을 놓고 중국 대(對)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사이에 대결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재정경제부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이 원화환율의 변동 폭을 줄이기 위해 시장개입을 거듭하고 있다. 올 초에는 이라크전쟁, 북핵 문제, SK사태, 카드채 문제 등의 요인으로 환율이 상승(원화가치 하락)하더니, 이라크 종전 후에는 세계적 달러화 약세와 함께 환율 하락이 시작되었다.》

▽국내 문제=외환당국이 최근 환율이 1월 수준(1170원)으로 하락하는 것을 우려하는 이유는 국내 소비와 투자 열기가 식어 있는 상태에서 환율 하락은 유일한 성장 동력인 수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문기(趙文基) 한국은행 국제국 부국장은 “최근 환율 변동의 특징은 경상수지가 겨우 균형을 맞추고 있는 상태에서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이 몰려들어 환율 하락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은 6월 이후에만 무려 54억달러(약 6조원)나 순(純)유입됐다. 아직까지는 감당할 만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영균(李英均) 한은 국제국장은 “다행히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계속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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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당국은 기업들의 수출경쟁력 약화뿐 아니라 증권시장에 미칠 악영향도 우려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최근 몰려든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의 상당액이 증권투자 이익뿐 아니라 환차익을 노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환율이 급격하게 하락(원화가치 상승)할 경우 이 자금은 환차익을 실현하면서 다시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재경부는 7월 임시국회를 통해 외환시장에 개입할 외환평형기금채권 발행한도 4조원을 추가로 인준받았다. 지난해 국회에서 인준받은 올해 외평채 발행한도 5조원 중 남아 있는 1조8000억원을 더하면 5조8000억원(약 50억달러)이 환율의 급격한 하락에 대비해 실탄으로 확보된 셈이다.

외환시장 개입이 단기적 처방이라면 장기적으론 외환 수급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재욱(李載旭) 한은 부총재보는 “경쟁적으로 외채를 빌리는 것을 조절하고, 대외투자 촉진정책을 통해 달러를 바깥으로 내보내야 할 것”이라면서 “더 중요한 것은 환율이 어느 쪽으로 갈지 쉽게 전망할 수 없도록 당국이 방향성을 흐려놓아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율의 움직임이 명백히 전망되면 너도 나도 ‘달러를 사자’ 또는 ‘팔자’는 한쪽 방향으로 몰려든다는 것이다.

▽위안화의 변동 가능성=현재 위안화 환율은 8.28 대 1로 미국 달러화에 묶어 놓은 상태. 환율 변동과 관련해 가장 심각한 상황은 중국 위안화의 변동이다. 중국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위안화 가치를 올릴 가능성이다.

로널드 매키넌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 위안화 가치가 오르면 국제금융계는 다음 목표물로 한국을 주목할 것이다. 한국엔 긴장되는 상황이다. 또 위안화 가치 상승 때문에 수입가격이 상승하고 금리마저 하락하면 중국이 디플레이션(저금리 저성장)에 빠질 수 있다. 중국이 성장 엔진 역할을 멈춘다는 것은 한국에는 재앙이 될 것이다.”

고래(미국과 중국) 싸움에 새우(한국)가 유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22일자 사설에서 “적어도 워싱턴에서는 중국 때리기(China-bashing)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위안화 가치 상승은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중국 등이 무역수지 흑자를 재원으로 미국 국채를 사들였는데 만약 이것이 중단된다면 영향은 심각할 것이다. 더구나 다수의 미국 기업들이 중국 성장에 따른 수혜자군(群)에 포함되어 있다. 중국 대외수출의 반 이상은 외국인 투자기업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환율전쟁의 실효성이 없다’는 이 주장은 아직은 소수의견이다.

미국과 중국이 환율제도를 둘러싸고 적정선에서 타협할 가능성도 있다. 존 스노 미국 재무장관은 22일 경제전문채널인 CNBC에 출연해 중국이 기존의 페그제를 유지하되 약간의 변동한도를 두고 이를 조금씩 확대시키는 방식을 미중 양국이 검토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한편 매키넌 교수는 “한국이 중국 일본과 함께 공동환율감시 시스템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용기기자·국제정치경제학박사 ykim@donga.com

▼한국 환율정책 변천사▼

우리나라 환율제도는 광복 직후 도입돼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4차례 큰 변화를 겪었다. 1945년 10월 미군정 당국은 고정환율제를 도입했다. 환율은 달러당 15원.

1964년 5월 ‘단일 변동환율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70년대 말까지 사실상 달러화에 고정돼 있었다. 이에 따라 매년 국내 물가가 많이 올랐음에도 환율은 변하지 않아 수출기업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원화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유지되자 정부는 80년 2월 ‘복수통화바스켓제도’로 바꿨다. 이는 미국 달러나 일본 엔 등 주요 통화의 시세와 국제수지, 국내외 금리차 등 정책조정변수를 감안해 한국은행이 매일 집중기준환율을 고시하는 것. 이 제도는 워낙 다양한 정책조정변수가 동원되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 ‘환율조작국’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90년 3월 ‘시장평균환율제도’가 도입됐다. 국내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결정되도록 하되 일정범위 안에서만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한 것. 변동 폭은 도입 초기엔 전날 대비 상하 0.4%였으나 그 후 계속 확대돼 외환위기 직전엔 2.25%까지 늘어났다. 미국 정부는 93년 5월 한국을 환율조작국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93년 2월에 출범한 문민정부는 경상수지가 대규모 적자인데도 원화가치가 유지되도록 유도함으로써 외환위기에 빠지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94년부터 96년까지 3년 동안 경상수지가 363억달러 적자였는데 원-달러 환율은 93년부터 96년까지 800원 수준이었다.

외환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97년 12월 환율변동폭을 없애고 시장에 맡기는 변동환율제도를 도입했다. 다만 전날 환율을 기준으로 그날 변동의 기준이 되는 기준 환율을 고시하는 ‘관리변동환율제’다. 이 제도가 시행된 뒤 외환당국의 기본 정책 방향은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속도 조절)’. 원칙적으로 시장에 맡겨 두되 핫머니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환율이 급등락할 경우엔 시장에 개입해 펀더멘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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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기자 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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