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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6월 23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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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발행되는 양성만보의 사진기자 옌창장(顔長江·35)은 싼샤의 수많은 유적들과 풍광이 수몰된 것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사람이다.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고향인 후베이(湖北)성 이창(宜昌)시 쯔구이(자歸)현에서 태어난 그는 올 4월 ‘최후의 싼샤’라는 제목의 사진집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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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자신이 싼샤 지역을 집중 탐사하며 모았던 각종 희귀 유물과 식물, 소수민족인 투자(土家)족의 전통용품 등을 10여개의 함에 담아 싼샤의 적당한 곳에 파묻을 계획이다. ‘타임캡슐’처럼 후대의 사람들이 영원히 사라져버린 과거 싼샤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싼샤댐의 수위가 종전 60∼70m에서 135m로 높아지면서 시링샤(西陵峽)는 평균 60m, 우샤(巫峽)는 55m, 취탕샤(瞿唐峽)는 50m 이상 수심이 더 깊어졌다. 전체 육지 수몰면적은 632km²로 1711개 마을이 전부 또는 일부가 물에 잠겼다.
저지대에 있던 유물들도 물에 잠기거나 본래의 위치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삼국지의 제갈량(諸葛亮)이 병서와 보검을 숨겼다는 시링샤의 병서보검협이 수몰됐고 소의 간과 말의 허파 모양을 한 거대한 종유석 협곡인 우간마폐협(牛肝馬肺峽)은 종유석을 통째로 들어내 절벽 위 안전지대로 옮겼다.
쯔구이의 굴원사(屈原祠)도 고지대로 이전했으며, 흉노족에 팔려간 한나라의 미인 왕소군(王昭君)의 고향인 샹시(香溪)는 2009년 싼샤댐 수위가 175m까지 높아지면 역시 물에 잠길 운명이다.
우샤의 바둥(巴東)현 옛 북송(北宋) 성터도 물속으로 사라졌다.
취탕샤와 우샤에서는 험난한 절벽의 나무다리 길인 20km의 고잔도(古棧道) 대부분이 물에 잠겼고 충칭(重慶)시 펑제(奉節)현의 절벽에 새겨진 대형 석각(石刻) 글씨인 쿠이먼(夔門) 마애제각(摩崖題刻)도 고지대로 옮겼거나 이전 작업 중이다.
또 삼국지의 유비(劉備)가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하며 숨진 바이디청(白帝城)은 유적지 대부분이 철거됐고 댐 수위가 다시 높아지면 물속의 섬으로 변하게 된다.
충칭시 윈양(雲陽)현의 장비(張飛)묘는 원래 위치가 수몰되면서 유적이 철거돼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이 밖에 충칭에서 가까운 푸링(부陵)의 바이허량(白鶴梁) 제각은 수중 박물관으로 보존될 예정이다. 바이허량 제각은 당(唐)나라 때 새겨진 물고기 모양의 석각과 양쯔(揚子)강의 수위 변화에 대한 자료, 고대 문인들이 남긴 석각 등이 돌에 새겨져 있다.
2009년 싼샤댐이 최종 완공돼 수위가 175m까지 높아지면 수몰 유적이 더 늘어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싼샤의 풍광이 현저히 훼손되는 것을 더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행 안내원 추이위안(崔遠·34)은 “굴원 이백(李白) 두보(杜甫) 백거이(白居易) 소식(蘇軾) 유우석(劉禹錫) 육유(陸游) 등 수많은 문인들이 싼샤의 풍광을 노래했던 것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험준한 준령 등 대자연의 장엄함과 신비스러움 때문이었다”면서 “물이 더 높아지면 싼샤의 옛 분위기는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싼샤=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삶터 잃은 투자族의 특이한 풍습▼
“싼샤(三峽)에는 세 가지 기이한 일이 있다. 투자(土家)족 처녀들이 시집가기 전에 사흘 동안 통곡하는 것과 기차역이 모두 산꼭대기에 있는 것, 전력이 그렇게 많은데도 전기료를 내야 하는 것이다.”
이창(宜昌)에서 만난 여행 안내원 탄춘팡(譚春芳·23)은 투자족 거주 관광지인 시링샤(西陵峽)의 스파이(石牌) 협곡을 안내하면서 이렇게 우스갯말을 건넸다.
싼샤 지역은 소수민족인 투자족이 집단 거주해온 곳으로 한족 문화와는 다른 독특한 전통 문화와 풍속을 지니고 있다.
중국 고전에 많이 나오는 파촉(巴蜀) 또는 파초(巴楚) 중 파(巴)가 바로 주(周)나라 때 투자족이 세운 나라이다. 파는 현재 우샤(巫峽) 및 충칭(重慶) 동쪽 일대이며, 촉은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초는 이창 지역이다. 현재 투자족은 150만명 정도.
투자족들의 독특한 풍속 가운데 하나가 현관(懸棺) 장례이다. 현관 장례는 사람이 죽으면 우선 땅에 가매장해 살이 썩고 나면 뼈를 수습해 싼샤의 험난한 절벽의 동굴이나 갈라진 틈에 관을 안치하는 것이다.
관은 사각형 또는 배 모양이다. 투자족들이 현관 장례를 하게 된 것은 초, 촉나라와 전쟁을 많이 해 시신을 일정한 곳에 묻기 어려웠던 데다 수역(水域)민족이었던 만큼 혼이 절벽 위에서 양쯔(揚子)강을 바라보며 ‘영원의 강’을 건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곡가(哭嫁)와 도상(跳喪)도 투자족의 전통 풍속이다. 처녀가 시집갈 때 사흘 동안 통곡을 하는 것이 곡가이며, 부모가 숨졌을 때 춤을 추는 것이 도상이다. 희비를 반대로 나타냄으로써 감정을 오히려 극대화시키는 독특한 민족 정서의 표현이다.
투자족은 백호(白虎)를 숭상한다. 민족 시조인 린쥔((늠,름)君)이 죽어서 영혼이 흰 호랑이로 변했다는 신화가 전해 내려온다. 또 도가(道家)의 불로장생의 영단 재료인 단사(丹砂)를 처음으로 쓴 것도 투자족이어서 도가의 원류가 이곳에서 흘러 나왔다고 한다.
싼샤=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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