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보니]조인길/미국 알아야 진짜 영어 배우는데…

  • 입력 2003년 5월 16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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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서는 반미 감정이 커지고 있는데도 고국의 영어교육에 대한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는 것 같다. 최근에는 많은 초등학생이 여름방학 동안 미국 연수를 갈 것이란 보도도 있었다. 부모들도 아이들이 몇 주간 미국에서 생활한다고 영어실력이 늘 것을 기대하지는 않겠지만 일찍부터 미국생활을 익히면 커서 영어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에 적지 않은 돈을 들인다.

필자는 30년 가까이 미국에서 살았다. 대학과 대학원을 미국에서 나왔고 아이도 낳아 길렀다. 펩시콜라 같은 회사도 다녔다. 10년 이상 유학생들을 상대로 목회도 해 봤고 사립고등학교의 이사도 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의 유명 대학들을 소개하는 책도 썼다. 어떻게 보면 30년 내내 이렇게 저렇게 유학생들과 관계를 맺고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필자가 느낀 건 한국 유학생들이 영어를 참 못한다는 사실이다. 박사학위를 딴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필자가 처음 유학 왔을 때만 해도 학부를 미국에서 나오면 영어 하나는 제대로 한다고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고교를 미국에서 나와도 영어가 신통치 않은 경우도 있다. 왜 그럴까.

외국어를 잘 하려면 그 나라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같은 단어라도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시대에 따라 해석을 달리해야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 유학생들은 미국문화를 배울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성적은 좋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정도의 영어는 구사한다. 하지만 그것만 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한국 유학생들이 미국문화를 배우지 않는 데는 무엇보다 잘못 심어진 한국인이라는 프라이드가 작용하는 것 같다. 언제부턴가 한국 유학생들 머릿속에는 ‘미국도 별거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있는 듯하다. 그러니 미국에서 살아도 미국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미국인의 사고가 어떻게 바뀌는지, 미국의 약점은 뭔지, 미국에서 배울 건 없는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나름대로 철옹벽을 쌓고 살다가 귀국해 버린다. 한국 학생들끼리 모여 한국 노래 듣고, 한국 비디오 보고, 한국 술집 가고, 한국 신문 보고, 한국 음식 먹고, 한국 농담을 하다가 방학이면 떼를 지어 한국에 간다.

아이들을 일찍 외국에 보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세계인의 마인드를 심어줘야 한다. 미국도 한국도 더 이상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서로를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줘야 한다. 너희 활동무대는 세계이고 행동반경은 한반도나 아시아가 아니라 지구여야 한다는 사실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언어도 배우고 문화도 배운 아이들이 커서 세계를 상대로 물건을 만들고 협상과 장사를 하며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다.

필자도 미국이 무조건 배울 점만 있는 나라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싫은 점이 있다면 왜 싫은지 그 이유를 알고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여름 고국의 학부모들이 어렵게 번 돈을 써가며 아이들을 미국까지 보내기 전에 먼저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미국에서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조인길 미국 드로얄사 아시아부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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