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의 어머니' 오가타여사 인터뷰

  • 입력 2003년 5월 7일 13시 50분


"이라크에서 미국의 군사작전은 끝났지만 새 정부를 세우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새로운 전쟁은 이제 시작된 셈입니다. 훨씬 어렵고 힘든 전쟁이지요."

'난민의 어머니'로 불리는 오가타 사다코(緖方貞子·76) 미국 포드재단 방문연구원은 지난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사실상 종전 선언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발칸반도 등에서 내전 등에 따른 난민이 급증하던 때 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으로 10년간 전쟁지역을 누볐던 그를 뉴욕 유엔본부 부근의 포드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이라크 전쟁과 탈북자 문제에 관해 들어보았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으로 일하면서 전쟁터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가.

"UNHCR의 임무는 난민에게 국제적 보호를 부여하고 난민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다. 유고 연방 붕괴 시점에서 사라예보에 난민이 많이 생겼고 나는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생명을 구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유엔은 전쟁지역에서는 일하지 않는데 UNHCR은 어쩔 수 없었다. 방탄조끼를 입고 이런 곳에 들어갔다. 정치적인 문제가 해결이 더디기 때문에 나는 조급해져서 정치관계자들에게 빨리 해결하라고 닥달했지만 쉽게 안됐다."

-세계 난민이 2100만명에 이른다. 해결이 가능한가.

"난민은 1995∼96년엔 2700만명이었으나 그 이후 줄어들고 있다. 전쟁이나 독재, 기아 등 고향을 등지게 했던 이유들이 해소되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 난민 숫자가 감소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23년간 난민이 계속 나왔지만 새 국가가 세워진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많았는데….

"많았는지 많지 않았는지 말하기 어렵다. 미군은 2차대전 때 도쿄에 대해 했던 것처럼 시가지나 시민들을 직접 겨냥해서 공격하지는 않았다. 전쟁에서 민간인 사상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난민은 없었다."

-전쟁이 끝나가는 이라크에 언제 평화가 깃들 수 있는가.

"현재는 군사작전만 끝난 단계다. 좋은 정부를 세우고 주민들이 평화와 안정을 누리도록 하는 것은 전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이라크인들은 사담 후세인 독재를 싫어했지만 외세나 전쟁도 싫어한다. 오랜 역사와 강한 자긍심을 갖고있는 이라크인들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떠나는 것도 좋아한다. 새 정부는 이라크가 인종적 종교적으로 매우 복잡한 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이라크는 정치적으로 안전이 확보되고 적절한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잘 교육받고 기술적으로 진보된 사람들이 있으므로 재건이 빨라질 것이다. 초기엔 혼란을 겪게될 것이며 이런 과정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미국의 책임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여러가지 방식이 있으므로 종교가 강조되는 아랍식 민주주의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라크 새 정부 구성에 유엔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가 아니면 미국 주도로 이뤄질 것인가.

"지금 미국 주도로 하고 있으며 미국은 바로 이라크 민간인들에게 넘겨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유엔이 전문지식을 갖고 있고 새정부 구성에 참여하고 싶어하지만 미국이 원하지 않으면 유엔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이번 전쟁 과정에서 유엔의 역할과 위상이 위축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유엔은 공권력을 행사하는 기구가 아니라 카운슬(council·협의회)의 기능을 하는 곳이다. 유엔은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왔고 전문성이 있지만 강대국이 무엇인가를 정하면 그에 따라가게 마련이다."

-20만∼30만명의 탈북자들이 중국을 떠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은 이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중국이 지금까지의 태도와 정책을 바꿀지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중국도 난민협정에 가입해 이를 지키고 있다. 탈북자가 난민 자격을 얻으려면 요건을 잘 갖춰야 한다. 중국은 탈북자를 이주자로 처리해서 북한에 돌려보내고 있는데 앞으로는 판정을 정밀하게 해야할 것이다. 일본과 한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이 문제에 있어서 개선돼야 한다. 아시아국가들이 전체적으로 이 점에 있어서 개선이 필요하다."

-중국의 탈북자들의 생활 여건에 대해 세계가 어떤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탈북자들이 중국의 '지하세계'에 살면서 노동착취와 성적 학대를 받는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범죄와 연결될 수도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작은 키의 전형적인 일본인 할머니 모습인 오카다씨는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간판스타다. 일본의 여대생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는 "포드재단은 나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준다"면서 "바쁘게 살아온 UNHCR 활동을 정리하는 책을 쓰고 있으며 내년에 펴낼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며 책을 쓰고 있는 그는 칠순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타고난 건강으로 지금도 테니스를 즐긴다"면서 "건강의 비결은 따로 없고 많이 걷고 잘 잔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일하면서 다른 문화권의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국제기구 활동에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오가타 사다코씨 약력▲

▼1927년 일본 도쿄 출생

▼도쿄 세이신(聖心)여대졸, 미국 조지타운대 석사(국제관계학), UC버클리대 박사(정치학)

▼일본 세이신여대 죠치(上智)대 소피아대 등에서 교수

▼1976년 일본 유엔대표부 공사, 특명전권공사

▼1982년 유엔 인권위원회 일본대표

▼1990년∼2000년 유엔난민고등판무관

▼2001년 인간안전보장위원회 공동의장(∼현재)

▼2002년 아프가니스탄 부흥지원국제회의 공동의장

▼포드재단 방문연구원

▼수상: 인권상(1994년) 필라델피아 리버티 메달(1995년) 서울평화상(2000년) 인디라 간디상(2002년) 등 다수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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