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日 기업 다시 뛴다

  • 입력 2003년 4월 24일 17시 21분


최근 이웃 일본에서는 기업들의 자구 노력이 두드러지고 있다. 1990년대 일본은 ‘기업의 부실’보다는 ‘정부의 정책실패’로 10년 이상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1970년대 이후 탄탄한 제조기업의 경쟁력으로 늘어났던 경상수지 흑자를 일본 정부가 제대로 관리했더라면 1990년대의 장기불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 경제의 황금기였던 1980년대에 일본 투자자는 광분했고 정부의 대응도 이성을 잃어버렸다. 이 기간에 일본 정부가 경상수지 흑자 누적으로 인해 늘어나는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 팽창을 방관한 것. 그 결과 1989년 일본의 닛케이 평균주가는 4만엔에 근접할 정도로 급등했고, 긴자(銀座)의 땅값도 끝없이 치솟는 등 금융·부동산 버블이 폭발 직전이었다. 일본 투자자들의 탐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 1990년대는 ‘상실의 시대’

일본 자본은 미국 대도시의 대형 빌딩은 말할 것도 없고 뉴욕의 랜드마크인 록펠러센터, 세계 최고의 골프장이라는 페블비치CC까지 사들여 미국인의 자존심을 크게 훼손했다. 일본 금융기관들도 이들의 이성을 잃은 투자 행위를 부추겼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전 세계 미술품과 골동품을 앞다퉈 사들였다. 확언컨대 80년대 일본 정부가 금리를 높이고 시중에 풀린 돈의 양(통화량)을 줄이는 등 적극적인 유동성 긴축정책을 폈더라면 1990년대 버블 붕괴로 인한 ‘상실의 시대’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로 성공에 취한 일본의 관료체계가 돌이킬 수 없는 정책 실패의 우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1990년대 국가경제가 파탄에 빠지자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수시장의 붕괴는 이들 기업의 경영성과를 크게 악화시켰다. 최근 포천지의 조사에 의하면 2001년 세계 500대 기업에 속한 일본 기업의 수가 88개로 1995년 145개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고 상위 10위권에 속한 기업 수는 1개에 불과했다. 실제로 반도체, 철강, 조선 업종에서는 한국 기업들에게까지 추격을 당했다.

물론 아직도 일본 정부는 금융기관 부실 해소에 소극적이고 정치권도 본격적인 경제개혁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 기업들의 회생을 위한 재기 노력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도요타와 혼다는 기록적인 영업이익을 올렸고 캐논도 세계 사무용품 시장에서 점유율 1위이던 미국의 제록스를 물리치고 수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국내 판매에만 의존하는 일본의 세븐일레븐은 부진한 내수시장에서도 좋은 경영성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런 일본기업들의 성공적인 자구노력을 상세히 분석했다. 이 중 우리에게 교훈이 될만한 것을 살펴보면 먼저 일본 기업의 세계화 노력을 들 수 있다. 일본의 주요 자동차 회사들은 이미 미국시장에서 판매량의 4분의 3을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캐논도 수입의 70%를 해외 시장에서 올리고 있다. 이제 이들은 부진한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 IT활용 매출증대 가져와

두번째로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일본기업들의 업무 프로세스 혁신을 들 수 있겠다. 알려진 바로는 IT에 대한 일본의 지출은 2001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4.4%로 미국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일본 기업의 경우 사무실에 인터넷에 접속된 데스크톱 컴퓨터가 한, 두 대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세븐 일레븐은 전 매장의 매출 정보를 하루 3번 수집하고 20분마다 이를 분석해 출력하는 맞춤형 정보시스템을 갖췄다. 이 회사는 이러한 시스템을 상품 개발 및 가격 결정에 활용해 소비자의 선호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고 재고관리를 원활히 해 불황 속에서도 매출 증대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일본 기업의 경영자 리더십의 부활이 기업 회생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금껏 일본 기업의 집단적인 의사결정구조(Conscious Building Process)는 기업의 혁신을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최근 캐논의 미타라이 사장은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 수익의 8%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 핵심기술 확보에 나서는 한편 미국의 합리적인 사업 관행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일본의 문화와 관행에 정합성이 떨어지는 사외이사 제도와 같은 영미식 기업 제도는 아직도 배척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런 일본 기업들의 건전한 노력이 지속되는 한 아무리 정부가 무능하더라도 일본은 망하지 않을 것이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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