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의 방어선' 佛-러의 줄타기

  • 입력 2003년 2월 28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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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러시아는 과연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두 나라는 이라크전을 막기 위해 안보리의 대이라크 결의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까지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선택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두 나라의 속내는 자존심과 현실론 사이에서 복잡해진다. 지구상 유일의 슈퍼 파워 미국의 노골적 ‘전쟁 밀어붙이기’에 맞서 두 나라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佛, 냉온탕 전법▼

“프랑스는 사담 후세인에게 아무런 애정이 없다.”

장 피에르 라파랭 프랑스 총리는 27일 이렇게 공언했다. 라파랭 총리는 한 프랑스 지방지와의 인터뷰에서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프랑스는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동맹에 동참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후세인 대통령이 유엔 무기사찰단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무력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면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파랭 총리의 이 발언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연일 반전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프랑스의 참전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이어서 주목을 끌었다.

라파랭 총리는 시라크 대통령이 미국과 영국의 대(對)이라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2차 결의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다음 날인 18일에도 “지금은 거부권을 말할 때가 아니다”고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환상의 콤비’로 불려온 두 사람이 이처럼 이라크전 발언에 온도차를 두는 이유는 뭘까. ‘전략적 역할 분담’이라는 게 대부분 프랑스 언론의 해석이다. 외교와 내정의 절묘한 역할 분담으로 각각 지지율 60%가 넘을 정도로 국민 지지를 받아온 두 사람이 이라크 전쟁 반대에서도 강경(시라크)과 온건(라파랭)으로 역할을 나누었다는 것.

이는 △터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라크전에 프랑스가 현실을 무시하면서까지 끝까지 반대할 경우 빚어질지도 모르는 국제무대에서의 입지 축소 △‘프렌치 프라이’ 개명 운동 등 미국의 프랑스 상품 불매운동이 프랑스 경제에 미칠 파급 효과 △미국의 이라크전 승리 후 프랑스의 60여개 이라크 진출 기업의 전후 복구사업 참여 불가 등 악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라크 정부를 지지하는 우파 신문 르 피가로도 27일 “전쟁이냐 평화냐, 양자택일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썼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러, 양다리 전법▼

러시아는 필요하다면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유엔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8일 밝혔다. 이바노프 장관은 이날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라크) 문제는 정치적 수단으로 풀어야 한다는 게 러시아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듯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7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라크 문제와 관련, 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로 합의했다. 전날까지도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만나 “이라크 공격을 자동 허용하는 새 유엔 결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던 푸틴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가 한층 누그러진 것이다.

미국은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알렉산드르 볼로쉰 크렘린궁 행정실장을 이례적으로 환대했다. 볼로쉰 실장이 딕 체니 부통령과 만나는 자리에 부시 대통령이 들러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안보리에서 무력을 통한 이라크 무장해제 결의안에 대해 찬성은 하지 않더라도 기권은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주요 국제현안에서 미국과 공동보조를 맞춰온 러시아가 이례적으로 이라크 사태에 대해서는 완강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으나 실용주의 외교노선을 걸어온 푸틴 대통령이 이번에도 결국은 미국과 거래를 통해 실리를 얻는 쪽을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양국은 ‘거래설’을 부인하고 있으나 미국은 이라크 전쟁 후 러시아 정유회사의 이라크 유전개발 참여 보장과 체첸반군의 국제 테러단체 지정 등을 카드로 내세워 러시아가 미국의 대(對)이라크 군사행동을 눈감아 주도록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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