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월드워치]러시아 우주비행사 훈련-통제센터를 가다

  • 입력 2003년 2월 11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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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린센터의 우주정거장 내부를 취재하고 있는 김기현 특파원.
가가린센터의 우주정거장 내부를 취재하고 있는 김기현 특파원.
《우주를 향한 인류의 꿈이 미국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의 폭발 사고로 시련을 맞고 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운행이 일시 중단됐고, 유인(有人)우주선 계획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사고 다음날인 2일 무인우주화물선을 발사한 러시아는 국제우주정거장(ISS) 계획을 계속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시련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기에는 인류의 생활공간이 우주로 넓혀질 것이 확실하다. 지금까지 전 세계 60억 인구 중 우주 여행을 경험한 사람은 425명. 2001년에는 첫 우주관광객까지 탄생했다. 우주시대로 가려는 인류의 꿈은 실현될 것인가. 본보는 올해 새기획 ‘특파원 월드 워치’를 시작하면서 첫 회로 러시아 우주비행사훈련센터와 인류가 우주에 마련한 유일한 생활 공간인 ISS의 통제센터 현장을 취재했다.》

모스크바에서 북동쪽으로 40㎞ 떨어진 즈뵤즈니이 고로독에 있는 가가린 우주비행사훈련센터(GCTC). 1961년 사상 처음으로 108분 동안의 우주비행에 성공한 유리 가가린의 이름을 따 흔히 ‘가가린센터’라고 불리는 곳이다. 2년 전에는 처음으로 우주관광객을 탄생시켜 ‘일반인의 우주여행 시대’를 연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훈련을 받은 우주 비행사만 수백명. 하지만 4명은 돌아오지 못하고 영원히 우주에 묻혔다. 이반 시바크 선임전문가(예비역 공군 대령)는 “컬럼비아호 승무원들 같은 희생이 있었기에 인류의 우주 개척이 계속될 수 있었다”며 “우주비행사는 강인한 체력과 전문성 이전에 사명감과 모험심,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지구로 귀환한 후 구 소련의 영웅이 됐던 가가린 역시 1968년 비행훈련 중 사고로 사망했다. 인류 첫 우주비행사의 최후는 그 후의 수많은 희생을 예고했던 셈이다. 이곳에는 가가린의 동상과 함께 그가 ‘마지막 비행’에 나서기 직전까지 머물렀던 사무실이 30년 넘게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다.

인간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우주로 나가려는 것일까. 가가린센터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역사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인 인간의 모험심과 도전정신을 불태울 공간은 우주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주비행사가 되는 길은 험난하다. 가가린센터는 공군에서 가장 우수한 조종사만을 뽑아 6년 동안의 훈련을 거쳐 우주비행사를 배출한다.

가가린센터측의 안내로 모니터를 통해 몇 가지 훈련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가장 힘들어 보이는 것은 원심력을 이용한 중력적응 훈련. 우주비행사가 들어있는 캡슐을 길이 18m의 회전팔에 달고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중력을 높였다.

로켓이 우주로 날아가거나 지구로 귀환할 때 가속도로 인해 엄청난 중력이 가해지기 때문에 중력에 적응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훈련실 책임자는 “러시아 우주비행사들은 대개 지구 중력의 8배(8G)까지 견딜 수 있도록 훈련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일반인들은 3∼4G에서도 의식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대로 무중력 상태의 우주공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수중에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 12m 깊이의 수조 속에 우주공간과 비슷한 상태를 만든 후 적응 훈련을 한다는 설명이었다.

우주관광객 1, 2호인 미국의 데니스 티토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마크 셔틀워스는 2000만달러(약 234억원)씩을 내고 이곳에서 1년 동안 훈련을 받은 뒤 우주선에 올라 ISS에서 1주일 동안 생활하고 돌아왔다.

가가린센터측은 “우주관련 시설 견학에서부터 우주비행사들이 받는 훈련을 직접 받고 수료증까지 기념으로 받을 수 있는 등 ‘우주’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컬럼비아호 참사로 우주관광 프로그램은 일시 중단될 전망이다. 러시아항공우주국(RKA)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왕복선 운행을 일시 중단해 당분간 러시아 우주선만으로 ISS에 대한 연락과 보급을 해야하기 때문에 관광객을 태울 여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곳 관계자들은 “현재 미국인을 비롯해 모두 28명이 훈련중인데, 우주관광을 희망하는 일반인도 포함돼 있다”며 우주관광이 곧 재개되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시바크씨는 ‘이번 사고에서 보듯이 우주여행은 여전히 위험하고 또 아직까지 일반인이 꿈꾸기에는 너무 비싸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비행기도 처음에는 소수의 것이었지만 어떤 순간부터 혁명적인 대중화가 이뤄졌던 것처럼 모든 것은 시간 문제”라고 낙관했다. 현재 우주 여행에서 가장 비싼 부분은 발사 비용. 1g의 물체나 사람을 우주로 쏘아 올리기 위해서는 금 3∼5g이 드는 것으로 계산한다.

시바크씨는 “한 번에 50∼60명을 태울 수 있는 발사체만 개발하면 우주여행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제는 누구도 비행기 여행을 두려워하거나 낯설게 느끼지 않는 것처럼 우주여행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날이 꼭 오리라는 전망이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우주비행사의 고된생활▼

무중력 상태에서 이발하면서 머리카락을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우주의 화장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우주공간에서는 어떻게 살아갈까. 가가린센터 관계자들은 “우주비행사라는 화려한 이름과 달리 각자의 임무 외에도 식사준비부터 이발까지 온갖 잔일을 직접 하기 때문에 실제 생활은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시간과 일과=아침(?)에 일어나 세면과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시간은 영국 그리니치 표준시를 따른다. 무중력 상태여서 운동할 때도 몸을 묶어 고정시킨다.

▽식사와 잠=우주식량은 대개 통조림이나 치약 같은 튜브 안에 들어 있다. 실험용으로 키우는 동물들에게는 주사기를 입에 물리고 먹이를 준다. 잠은 각자 일인용 침실(cabin)의 벽에 붙어서 잔다.

▽화장실과 목욕=건식 사우나를 할 수 있고, 샤워나 세수는 분무기로 물을 뿌려가며 한다. 양치질도 입안에 치약을 뿜어서 한다. 이발이나 면도를 할 때 진공청소기를 사용한다. 머리카락 등을 빨아들이지 않으면 허공에 떠다니기 때문. 화장실은 수세식이 아니라 공기로 빨아들인다.

▽물=지상에서보다 적게 마신다. 하루에 여자는 5ℓ, 남자는 4ℓ 정도.

▽음주와 흡연=흡연은 금지. 축하할 일이 있으면 1인당 30g의 코냑은 허용된다. 술이 담긴 용기에 빨대를 끼워서 빨아마신다. 취하기는 지상과 마찬가지.

▽섹스=지금까지 4쌍의 부부 우주비행사가 있었지만 우주에서 함께 생활한 적은 없었다. 의사들은 우주공간에서의 임신과 출산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귀환 뒤 생활=우주에서 오래 머무르면 눈이 충혈되고 구토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 다리부터 힘이 약해지고 근육도 늘어난다. 귀환할 때는 살이 2∼5㎏ 정도 빠진다. 귀환 뒤 의료검진을 받으며 몸이 지구 환경에 다시 적응하는지 살핀다. 체구가 작은 사람이 회복이 빠르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우주정거장과 하루 16차례 교신"▼

모스크바 인근 소도시 코롤료프에 있는 비행통제센터(MCC). 미국 휴스턴의 우주센터와 함께 우주정거장인 ISS를 운용하는 곳이다. MCC 안의 주관제실 대형 스크린에는 지구 궤도를 비행하는 ISS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타티아나 바이체프 선임전문가(사진)는 “ISS는 전 세계가 힘을 모아 우주 공간에 건설한 유일한 생활공간”이라고 말했다.

―ISS의 현황은….

“현재 미국인 2명과 러시아인 1명으로 구성된 6번째 팀이 머물고 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운행이 일시 중단됨에 따라 6월까지는 프로그레스와 소유즈 등 러시아 우주선들이 ISS를 오갈 예정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단독으로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ISS와의 통신은….

“12개 지상기지국을 통해 1시간30분마다 연락한다. 화상 연결은 드물고 대개 음성 통화만 한다.”

―러시아와 미국의 우주과학기술을 비교하면….

“ISS를 운용하면서 시스템이 비슷해지고 있지만 아직 다른 점이 많다. 러시아는 우주인들의 장기 체류에, 미국은 단기 체류에 치중했다. 우주를 다녀온 우주비행사는 미국이 268명으로 러시아의 98명보다 많다. 하지만 러시아는 3차례에 걸쳐 모두 747일 동안 우주에 머무른 세르게이 압데예프, 한번에 438일 동안 체류한 발레리 폴랴코프를 배출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러시아의 우주선은 어떻게 다른가.

“우주왕복선이 여러 번 이용할 수 있게 개발됐지만 러시아 우주선은 1회용이다. 지구로 귀환할 때는 승무원이 탄 캡슐만 남기고 모두 타버린다. 우주왕복선에 비해 화물수송능력이 떨어진다. 러시아도 ‘부란’이라는 우주왕복선을 개발했지만 실제로 배치하지는 않았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인류의 우주개척사▼

·1957.10. 4 소련,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

·1961.4.12 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 성공

·1963. 6.16 소련 우주비행사 발렌티나 테레슈코바, 여성 첫 지구궤도 비행

·1965.3.18 소련 우주비행사 알렉세이 레오노프, 최초로 우주 유영

·1969. 7.20 미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 아폴로 11호로 달 착륙

·1976. 7.20 미 바이킹 1호, 화성에 착륙

·1986. 1.28 미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이륙 직후 공중폭발, 우주비행사 6명 전원 사망

·1986.2.20 소련, 세계 최초의 우주정거장 미르호 발사

·2000.11.31 국제우주정거장 첫 상주 승무원 우주도착

·2001.3.23 미르 폐기

·2003. 2. 1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지구 귀환 도중 폭발, 승무원 7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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