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미사일 잡다 反테러 동맹국 놓칠라"

  • 입력 2002년 12월 12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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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11일 스커드 미사일을 실은 북한 화물선 소산호의 예멘행을 전격 결정함에 따라 사건은 소산호가 9일 스페인 해군에 나포된 뒤 이틀 만에 일단락됐다.

소산호가 지난달 중순 북한 남포항을 출발할 때부터 이를 추적해 온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확인해 주는 현장을 잡고도 놓아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미 정부와 언론은 국제법상의 문제 및 미국과 예멘의 관계를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미국과 예멘의 특수관계〓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공격 등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예멘의 협조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예멘과 이번 일로 마찰을 빚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다.

콜린 파월 국무부장관이 소산호를 풀어준 배경과 관련해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확산을 우려하나 동시에 이 미사일이 우리와 우호관계에 있는 국가로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고 말한 것이나,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이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예멘의 기여를 고려했다”고 말한 것 등은 이를 뒷받침한다.

예멘은 1991년 걸프전 때는 이라크를 지지했으나 지난해 9·11테러 이후엔 국내의 과격 이슬람 세력을 단속하고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왔다. 미국이 지난달 무인항공기를 이용해 예멘 내 테러 용의자들을 공격했을 때도 예멘 정부는 사전에 협의된 것이라며 이를 두둔했다.

미국은 8월에도 미사일 거래와 관련해 북한에 대해선 제재 조치를 취했으나 예멘에 대해선 이를 유보했다.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예멘이 지난해 7월 미사일을 구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상기하면서 이번 거래는 그 같은 약속을 하기 전에 북한과 예멘이 체결한 거래의 마지막 선적분이라고 설명했다.

미 언론은 미국이 9일 예멘에서 약 960km 떨어진 공해상에서 소산호를 나포해 검색한 것도 예멘의 체면을 배려한 조치로 분석하고 있다.

▽법률적 문제〓미국은 9일 소산호 나포 이후 북한과 예멘의 미사일 거래가 국제법에 저촉되는지, 또 미국이 이 배에 실린 미사일을 억류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있는지 여부를 연구했으나 결국 풀어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이는 무엇보다 양국의 미사일 거래가 형식 논리로는 합법적이기 때문이다. 북한과 예멘은 대량살상무기 운반수단의 확산 방지를 목표로 하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의 회원국이 아니다. MTCR는 사거리 300㎞, 탄두 중량 500㎏ 이상의 미사일과 관련 기술에 대한 제3국 수출을 금지하고 있으나 북한과 예멘은 이 같은 규제를 받지 않는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이 11일 브리핑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고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우려하고 있다”면서도 “국제법은 국제법”이라고 떨떠름하게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 클린턴 행정부와의 미사일 협상에서 미사일의 개발과 수출이 자주권에 속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미국의 미사일 포기 요구에 식량과 현금 지원 등 대가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또 유엔해양법 110조는 어느 국가든 공해상에서 국기를 게양하지 않거나 소속이 불분명한 선박에 대해 임검권(right of visit)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돼 있으나 선박과 화물에 대한 압수권한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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