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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31일 15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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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북-일 수교회담이 피랍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끝나자 31일 내각 관방에 설치된 피랍 귀국자 처리 관련 임시기구를 공식화하는 등 장기전에 대비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또 이들의 북한 귀환을 거부한다는 원칙을 거듭 확인하는 차원에서 관련 비용도 예산에 정식 반영하기로 했다.
북한에 가족을 남겨둔 채 15일 일본에 온 5명은 협상 실패로 한동안 '제2의 생이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북-일간 차기 수교회담이 11월 말경 열려 타협이 이뤄진다 해도 한 달 이상을 남편 혹은 자녀들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북한 잔류가족의 일본행을 조기에 성사시키려 했으나 차질이 생기자 당혹해 하고 있다.
국내여론을 등에 업은 일본 정부는 당초 일시귀국한 피랍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단 북한 귀환을 거부한 뒤 북한을 압박하면 문제가 쉽게 풀릴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일본에 1∼2주 체류한 다음 귀국시키기로 한 약속을 먼저 지켜야 하며 가족 일본행은 각 가정에서 논의한 후 자유롭게 결정할 일"이라고 버티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납치로 생이별을 했던 피랍자들에게 이제 북한 잔류가족과 '제2의 생이별'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비난을 우려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였다.
피랍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가족과 만나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에 대해 가족의 일본행 허가를 촉구하는 한편 일본 정부를 상대로는 평양행을 굳이 막으려 하지도 말라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피랍자 하스이케 가오루(蓮池 薰·45)씨는 30일 북-일 수교회담 결렬 소식에 대해 일체의 논평을 거부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는 일본이나 북한 가운데 어느 쪽을 지지하고, 어느 쪽을 비판하기 어려운 피랍자의 착잡한 심경을 대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