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이라크 무기사찰 연기

  • 입력 2002년 10월 4일 17시 54분


한스 블릭스 유엔 이라크 무기사찰단장이 당초 계획된 사찰일정 연기를 발표하고 있다. - 뉴욕AP연합
한스 블릭스 유엔 이라크 무기사찰단장이 당초 계획된 사찰일정 연기를 발표하고 있다. - 뉴욕AP연합
미국이 대(對) 이라크 군사공격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유엔은 당초 계획된 이라크 무기사찰 재개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 이는 미국이 제시한 대 이라크 강경 결의안 쪽으로 유엔이 기울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동안 미국의 무력사용 계획에 반대해 왔던 국가들의 반응이 주목된다.

▽유엔 사찰연기 발표〓한스 블릭스 유엔 무기사찰단장은 3일 유엔본부에서 안보리 15개 이사국들에 “안보리의 이라크 결의안 논의가 끝날 때까지 사찰 재개를 미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사찰에 들어간 뒤 내용이 달라진 결의안이 사찰단에 하달된다면 혼선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사찰 재개가 안보리의 결의안 통과 여부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라크 핵 관련시설 사찰을 담당하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도 “안보리의 통일된 지지를 얻지 못하면 이라크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효과적인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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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1일 이라크측과 2주내 무기사찰을 위해 사찰단을 바그다드에 보내기로 합의했으나 미국이 사찰단의 무력 권한 사용 등을 골자로 하는 강력한 내용의 유엔 결의안 초안을 마련하면서 실시 여부가 불투명했었다.

만약 미국이 마련한 결의안이 안보리에서 통과된다면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 개발 실태를 적은 보고서를 제출할 때까지 30일 이상 사찰 재개가 연기된다.

블릭스 단장과 엘바라데이 총장은 4일 워싱턴에서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과 만나 미국측 결의안 상정과 사찰 재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강해지는 미·영 압력〓무기사찰 일정에 대한 유엔-이라크 합의가 무력화됨으로써 미국은 안보리 이사국들에 결의안 채택을 서두르도록 외교적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3일 “이제 선택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그에게 책임을 물을 유엔에 있다”면서 “그 같은 선택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미국은 직접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해 대 이라크 군사공격의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했다.

그는 “테러전은 세계 최악의 무기로 미국 및 우방국들을 해치려는 세계 최악의 지도자들을 겨냥해 확전되어야 한다”면서 후세인 대통령을 “이 자(this guy)”로 지칭하고 그를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3일 “강력하고 새로운 무기사찰 결의안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사찰단이 이라크의 99%를 사찰해도 나머지 1%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비축되고 개발된다면 소용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32㎢에 달하는 이라크 대통령궁 8곳을 사찰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미국측 주장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계속되는 공습〓한편 미국과 영국 전투기들은 3일 이라크 남부지역을 공습해 이라크인 5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했다. 최근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사찰 재개를 연기시키기 위한 초강수 압력으로 풀이되고 있다. 블릭스 단장은 “비행금지 구역에 공습이 계속될 경우 사찰단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서 이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사찰 재개에 나설 것이라고 밝혀 왔다. 그러나 미국은 사찰작업이 진행돼도 공습을 멈출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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