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1주년]뉴욕 `그 자리`서 추도행사

  • 입력 2002년 9월 11일 18시 38분


9·11 테러 1주기인 11일 추모식이 열린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 ‘그라운드 제로’에서 유족들이 ‘영광의 원’에 조화를 올려놓고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AP
9·11 테러 1주기인 11일 추모식이 열린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 ‘그라운드 제로’에서 유족들이 ‘영광의 원’에 조화를 올려놓고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AP
9·11 테러 1주년 추모행사가 11일 뉴욕의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열렸다.

세계무역센터(WTC) 빌딩이 서있던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희생자 유족들이 처음으로 직접 내려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유족 크리스티 페러는 “사랑하는 가족이 숨진 곳에 내려가 땅을 직접 만져보고 장미꽃을 헌화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라운드 제로에 둥그렇게 마련된 ‘영광의 원’ 안으로 유족들은 양란화환을 던져 넣었고 원 주변에서는 희생자의 어린 자녀들이 주저앉아 계속 눈물을 흘렸다.

추도식이 진행되는 동안 뉴욕의 교회와 일반 가정에서는 피랍 여객기가 최초로 WTC에 충돌한 오전 8시46분과 WTC 쌍둥이 건물이 마지막으로 무너진 오전 10시29분에 맞춰 일제히 종을 울렸다. 세계 20개 도시에서 현지 시각으로 오전 8시46분에 모차르트의 레퀴엠(진혼곡)을 이어 부르는 행사가 가장 먼저 아침을 맞은 뉴질랜드에서 시작됐다.

▼미국▼

이날 새벽 뉴욕시 5개 보로에서 각각 출발한 뉴욕 소방관과 경찰들이 백파이프 드럼 연주대를 앞세우고 도착하자 수만명이 운집해 있던 그라운드 제로는 추모식 분위기가 짙게 깔렸다. 첫 항공기의 WTC 충돌 시각인 오전 8시46분(한국시각 오후 9시46분)에 맞춰 1분간 전국적으로 묵념행사를 가졌다.

“고든 M 아모스, 에델미로 아바드, 마리아 로즈 아바드….”

이따금 바람이 거세게 부는 가운데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WTC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자 희생자 유족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801명의 희생자 이름 호명 행사는 유명인사, 희생자 가족과 생존자 등으로 계속 이어갔다.

이 사이에 장미꽃을 든 희생자 유족과 친지들은 그라운드 제로에 마련된 ‘영광의 원’으로 내려가 땅을 만져보고 화병에 꽃을 꽂았다. 일부 유족은 따로 떨어져 꽃을 땅에 놓고 흐느껴 우는 바람에 보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행사에서 연설은 없었다. 말로 설명할 필요도, 설명할 수도 없다는 것. 테러로 남편을 잃은 바버라 미네르비노는 “어떤 말로도 가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으니 침묵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 대신 유족 어린이들이 아빠를 회고하는 짤막한 글을 읽기도 했다.

오후 7시(한국시각 12일 오전 8시)부터 맨해튼 남단 배터리파크에서 펼쳐지는 ‘영원의 불꽃’ 점화 행사에는 제57차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각국 정상들이 참석한다. 불꽃 점화 행사는 유족들이 강력히 희망해 임시기념물로 설치된 것. 센트럴파크 등 뉴욕시내 5개 공원에서는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희생자 추모음악제와 촛불 추모식이 열린다. 미국 각 도시에서 묵념과 촛불추모행사 등이 펼쳐졌다. 피랍여객기 충돌 테러를 당한 워싱턴의 펜타곤(국방부 건물)과 펜실베이니아주 섕크스빌 벌판에서도 추모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펜타곤, 섕크스빌 행사장을 방문한 데 이어 오후 4시45분에는 그라운드 제로를 찾아 헌화한 뒤 유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오후 9시(한국시각 12일 오전 10시)엔 대국민 연설을 하고 12일 유엔총회에 참석해 테러전쟁에 관한 미국의 결의를 밝힐 예정이다.

▼서방 국가▼

영국 런던에서는 오후 1시13분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패리시 미국대사가 주재하는 기념식이 성바오로 성당에서 열려 토니 블레어 총리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찰스 왕세자와 해리 왕자가 영국인 희생자 67명의 유족을 위로했다.

프랑스 파리는 10일 저녁 시청 인근 하늘에 2개의 대형 광선을 비추는 행사를 벌였다. 로마 교황청에서 열린 미국 소방관을 위한 특별 미사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어떤 상황도, 어떤 철학이나 종교도 인간 생명과 존엄성을 해치는 공격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설교했다. 호주에서는 3000명이 바닷가에서 빨간색, 흰색, 푸른색 옷을 입고 나와 인간 성조기를 연출했다. 서방 주요도시에서는 첫 비행기의 WTC 충돌시각에 맞춰 1분간 묵념행사를 가졌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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