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정상회의 폐막]한국에 남긴 것

  • 입력 2002년 9월 5일 18시 29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SSD)'행사장 밖에 거대 기업에 의해 희생된 약자들의 모형을 본뜬 종이 조각상 6000여개가 전시돼 있다. - 요하네스버그로이터뉴시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SSD)'행사장 밖에 거대 기업에 의해 희생된 약자들의 모형을 본뜬 종이 조각상 6000여개가 전시돼 있다. - 요하네스버그로이터뉴시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SSD·일명 지구정상회의)가 4일 폐막됐으나 참가국들이 환경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 정치적 타결을 하는 바람에 국내 산업에 미치는 즉각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어족자원 배분 문제 등에서 부분적으로 실리를 챙겼으나 세계연대기금의 갹출이나 공적개발원조(ODA) 확대 등 빈곤퇴치를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에 적극적인 동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재생에너지 확대 문제의 경우 201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1차 에너지 공급량의 15%까지로 늘리자는 유럽연합(EU)의 주장이 미국과 개발도상국 모임인 77그룹의 반대로 무산되고 국가별로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자는 쪽으로 애매하게 합의됐다.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 비율이 1.6%에 불과하고 화석연료와 원자력 의존도가 높아 재생에너지 비율이 확대될 경우 산업계에 엄청난 타격이 미칠 것으로 우려해 온 한국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화학물질 관리, 생물다양성 이익공유 체계 마련, 불법 및 과잉 조업에 대한 보조금 폐지, 농업보조금 감축 등의 문제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한국도 이번에 합의된 이행 계획에 따른 후속조치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WSSD 마지막 날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2, 3위인 중국과 러시아가 교토의정서 조기 비준 의사를 밝힘으로써 올해 내에 온실가스 감축이 시작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화학물질 관리 강화〓이번 회의에서 합의된 화학물질 관리 강화는 국제교역 유해화학물질·농약의 사전 통보 승인 절차에 관한 로테르담협약(PIC협약)과 잔류성 유기오염물질에 관한 스톡홀름협약(POP협약)의 내용을 사후에 인준한 데 불과하다.

이들 2개의 국제협약에 가입한 한국은 협약의 내용을 이행하기 위한 후속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로테르담협약의 이행을 위해 한국 정부는 앞으로 △수출자의 구체적인 의무 사항에 대한 고시 마련 △국내에서 금지 또는 취급이 제한되고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정보를 협약 사무국에 통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스톡홀름협약 이행을 위해 다이옥신 푸란 등의 삭감을 위한 국가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 성과를 당사국 총회에 보고해야 하며 잔류성 유기물질을 포함한 폐기물을 환경친화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유전자원 접근 및 이익 공유 체계 마련〓선진국들이 개도국의 동식물 미생물 박테리아 등의 종자나 유전정보 등을 이용해 의약품 등 신제품을 개발했을 경우 지금까지 관련 수익 전체를 선진국들이 가져갔던 것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이들 유전정보가 유출되는 나라들은 대부분 개도국인 데 비해 학술 목적이든 상업용이든 여기에 접근하고 이를 상품으로 개발해 수익을 얻고 있는 것은 선진국인 만큼 선진국들이 일정액의 사용료나 수익금의 일부를 개도국에 지불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토종 라일락인 ‘미스킴라일락’이 미국으로 유출돼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멸종되다시피 한 구상나무도 외국으로 유출돼 서구의 크리스마스트리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번 합의에 따라 한국도 우리의 생물자원과 유전정보를 보호하고 이를 이용했을 때 발생하는 수익을 배분하기 위한 법률 체계를 갖춰야 한다.

▽불법 및 과잉 조업에 대한 보조금 폐지〓해양수산부는 “불법 조업에 대한 보조금 폐지는 당연하지만 무엇을 ‘과잉 조업’으로 규정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다”며 “과잉 조업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해야 폐지되는 보조금의 항목과 금액을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해상의 한국 원양어업에 대해 국제사회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어 이것이 과잉 조업으로 규정될 경우 수산업은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성희기자 shchung@donga.com

▼염태영 사무총장 참관기…'20년 후퇴한 회의'▼

염태영 사무총장

이번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렸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SSD)는 또 한번 인류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었다. 심각한 지구 환경 위기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열렸던 이 회의가 알맹이 없는 수사만 나열한 채 폐막됐기 때문이다.

주요 쟁점 사항인 세계화와 공적개발원조(ODA) 제공 문제, 대체에너지 공급 비율 확대와 빈곤 퇴치를 위한 연대기금 조성 등 어느 하나 책임 있는 대안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두루뭉실한 이행계획서 만들기에 그치고 말았다.

치안조차 열악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2주 전부터 찾아와 WSSD의 실질적 성과 도출을 촉구하던 세계 NGO들은 끝내 분노를 터뜨리고 말았다. 시민사회포럼 참석자 1만여명의 거리행진이 있었는가 하면 정상회의 마지막 날에는 미국의 책임회피 규탄과 기업 홍보장으로 전락한 이번 회의에 반대하는 기습시위가 회의장 안팎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이번 분위기를 감안하듯 일부 참석자들 가운데 이번 WSSD가 ‘리우+10 회의’가 아니라 ‘리우-20 회의’라는 비아냥이 터져 나왔다. 리우회의 당시보다 20년이나 후퇴했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의 역할도 많은 문제를 노출했다. 우리 정부는 이번에 제기된 여러 이슈에 대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분명한 입장과 역할을 보여주기보다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형태를 보였다.

하긴 초강대국 미국이 외면하는 WSSD에서 우리 정부가 앞장서 노력한다고 해서 얼마나 실익이 있겠는가 하는 회의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회의가 남아공에서 개최된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아프리카 대륙 전반의 심각한 빈곤 문제, 열악한 물 사정과 위생상태, 그리고 에이즈의 창궐 등 저개발국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지 않는 한 지속 가능한 인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을 전세계에 확고하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2일 WSSD 본회의장에서는 미래세대 어린이 5명이 세계 정상들을 향한 외침이 있었다.

“어른들은 돈과 부에 대해 너무 걱정하고 우리의 미래는 생각지 않습니다. 세계의 어린이들은 당신들에게 실망했어요.” 그들의 외침이 빈손으로 떠나는 우리 참가단 귓전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염태영 WSSD 국가준비위원회 실무위원·지방의제21전국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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