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1년 뉴욕-카불 그 현장을 가다

  • 입력 2002년 8월 25일 18시 29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만난 소년 리말(앉아있는 아이)은 지금 비록 남루한 옷차림에 땔감을 줍는 가난한 소년이지만 커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 카불=김성규기자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만난 소년 리말(앉아있는 아이)은 지금 비록 남루한 옷차림에 땔감을 줍는 가난한 소년이지만 커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 카불=김성규기자
다음달 11일로 9·11테러 1주년을 맞는다. 이 비극적 사건이 미친 영향은 실로 심대하다. 세계 질서는 물론 개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그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기 때문이다. 심층기획 ‘9·11테러 1년’을 위해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내렸을 때 카불은 4년 넘게 계속된 가뭄으로 희뿌연 먼지 속에 잠겨 있었다.

그날 오후 카불 남서쪽 끝 다루라만궁 앞에서 카불초등학교 2학년생인 라말(10)을 만났다. 아프가니스탄 왕가의 정궁(正宮)이었던 다루라만궁은 79년 구 소련군의 침공과 내전, 그리고 지난해 미군의 폭격으로 형체만 남아 있었다.

라말군은 동네 아이들과 겨울용 땔감을 모으는 중이었다. 궁 주변에는 지뢰와 불발탄을 경고하는 흰색 V자 표지들이 널려 있었지만 아이들은 그 속을 헤집고 다니며 마른 나무 조각들을 주워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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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위험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양팔을 머리 위로 올려 둥그런 원을 만들더니 “지난해 말만 하더라도 이곳에 알 카에다가 주둔하고 있어서 이만한 크기의 미군 포탄들이 수시로 떨어졌는걸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묻자 “선생님이 되겠다”고 했다. “아이들을 가르쳐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미국의 대 아프간 전쟁으로 아프간 민간인만 380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150만여명의 난민이 추가로 발생해 난민은 522만명에 이른다. 전후 복구에는 50억달러 이상이 들 것으로 국제기구들은 추산하고 있다.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의 생사는 아직도 모른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대테러 전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음달 11일 뉴욕에선 미 역사상 가장 슬픈 추모제가 벌어진다. 이 모든 것들이 라말군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라말군의 얼굴에서 본 것이 정녕 희망이었기를 빌었다.

카불(아프가니스탄)〓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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