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정권이 유대인에 강탈 베를린 금싸라기땅 보상분쟁

  • 입력 2002년 4월 2일 17시 59분


베를린 시내 중심지에 있는 축구장 13개 크기의 금싸라기 땅(15에이커·약 1만8000평)이 히틀러 정권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유대인 소유로 밝혀져 유대인에 대한 최대의 피해보상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시가 5억달러(6500억원 상당)로 평가되는 이 땅에 대한 보상소송이 전후 57년이 지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연은 극적인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30년대 이 땅의 소유주였던 게오르그 베르트하임은 대형 백화점 6곳을 보유했던 재계의 거물. 그는 하필이면 히틀러의 집무실 맞은편 거리에 가장 큰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매일 목격해야 하는 유대인의 경제적 성공을 참고 볼 수 없었다. 곧 독일 인종인 아리안족이 소유권을 빼앗는 ‘아리안화(Arianization)’가 히틀러의 오른팔이던 헤르만 괴링에 의해 진행됐다.

나치정권으로부터 유형무형의 압력을 견디다 못한 베르트하임은 유대인이 아니었던 부인 우르줄라에게 이 땅과 백화점의 소유권을 넘겨주었으나 이게 화근이었다. 베트르하임이 39년에 사망한 뒤 회사의 변호사이던 야심만만한 아더 린드켄즈가 우르줄라와 결혼했다. 그는 전후 다른 유대인 기업을 합병하면서 회사 이름을 개명, 베르트하임을 기록에서 지웠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베르트하임의 유족들도 비참했던 과거를 기억 속에서 지웠다. 그러나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쏟아져 나온 동독의 비밀문서에서 한 대학원생이소유권의 강제적 이전 과정을 밝혀내면서 베르트하임은 역사의 잿더미에서 부활했다.

6세 때 미국으로 도피한 베르트하임의 조카이자 평범한 주부인 바라바 프린시프(69)는 어느 날 유대인 보상회의로부터 베르트하임의 놀라운 과거를 통보 받았다. 동독 치하에 있던 베르트하임의 땅은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베를린시 보상국은 지난해 6월 이 땅의 소유권이 베르트하임 가문에 있음을 인정한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소유권의 이전 과정에 히틀러 정권이 직접 개입한 증거가 없다며 보상을 거부,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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