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언론이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65)의 은퇴에 바치는 헌사는 끝이 없다. 르몽드지는 그의 고별 패션쇼가 열린 22일 40년 패션인생을 조명하는 특집판을 냈다.
‘사람들은 그를 이브 생 로랑이라 부른다’는 제목의 TV 다큐멘터리도 이달 말까지 전파를 탄다. 현대 예술의 걸작만을 전시하는 퐁피두센터도 그의 고별 패션쇼를 위해 기꺼이 전시 공간을 비웠다.
일개 디자이너의 은퇴에 이처럼 프랑스 국민과 언론이 법석을 떠는 이유는 그가 전후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문화강국 프랑스의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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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태생의 이브 생 로랑은 53년 불과 17세의 나이로 크리스티앙디오르에 입사해 두각을 나타낸 뒤 62년 파리에 자신의 ‘오트쿠튀르(고급 의상실)’를 차렸다. 그는 66년 치마 일색이던 여성용 정장에 바지 정장을 도입했고 사파리재킷을 고안하는 등 놀라운 창조성으로 60, 70년대 세계 패션계를 풍미했다. 그의 창조는 당시에는 혁명이었으며 오늘날엔 고전으로 평가된다.
‘현대 패션의 모차르트’라는 찬사까지 들은 그가 은퇴한 이유는 99년에 이브생로랑(YSL) 브랜드를 매각한 패션 기업 구치와의 갈등, 고전적인 스타일을 고집하는 그의 디자인 세계와 최신 패션조류와의 거리감 등이 꼽힌다.
그는 이날 르몽드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무질서와 퇴폐의 시대다. 이런 시대에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내게 많은 슬픔을 가져다 줬다. 그 어느 때보다 고독하다.”
▼퐁피두광장 파리시민 3000명 몰려▼
그것은 하나의 축제였다.
22일 오후 6시반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앞에는 끝도 없이 밀려드는 검은색 세단에서는 턱시도 정장과 화려한 모피로 성장한 상류사회 남녀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후 7시부터 시작되는 이브 생 로랑의 고별 패션쇼.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부인인 베르나데트 여사 등 정재계 인사,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와 잔 모로를 비롯한 문화계 인사 등 1500여명이 초청됐다.
광장에는 그보다 많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파리의 일반 시민들은 퐁피두센터 건물 전면에 설치된 2개의 대형스크린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앉기 시작했다. 프랑스 언론이 추산하는 이날 시민 관람객은 3000여명.
7시 정각 쇼가 시작되자 퐁피두광장은 축제의 마당으로 변했다. 클라우디아 시퍼와 나오미 캠벨 등 세계 정상급 모델들이 이브 생 로랑이 처음 고안한 여성용 바지 정장, 사파리 재킷 등을 선보이자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행사의 클라이맥스는 200명의 모델이 66년 이브 생 로랑이 처음 고안한 여성용 바지 정장을 입고 퍼레이드를 펼친 뒤 드뇌브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당신’이라는 노래에 맞춰 올해 65세의 이브 생 로랑이 등장하는 장면. 패션쇼장 안팎의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거장(巨匠)의 은퇴를 아쉬워했다.
이브 생 로랑은 그의 화려했던 인생을 상징하듯 샹송 ‘장밋빛 인생’이 흐르는 가운데 무대 뒤로, 아니 패션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광장에 있던 손님들 가운데 손수건을 꺼내는 이들이 많았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