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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24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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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르헨티나는 1320억달러에 이르는 외채를 최대 3년간 유예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갖게 됐다. 국제채권단에 갚을 돈으로 국내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한편 밀린 월급과 연금을 지급해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대책으로 아르헨티나 경제가 되살아날 수 있을지,국제통화기금(IMF)이나 채권국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로드리게스 사아 임시 대통령이 발표한 경제대책의 골자는 국내 경제를 진작시키면서 동시에 국제적 지원도 추가로 받아내겠다는 것으로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도 “외채 지불중단 선언이 채무를 갚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당장 채무 불이행(디폴트)이 선언될 경우 경제회복에 필수적인 외국의 지원이 일거에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조치로 아르헨티나 경제가 디폴트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도 사실이다.
새 경제대책에 대통령 전용기 매각, 공무원 봉급 동결 등 이른바 허리띠 졸라매기 정책을 넣은 것도 긴축을 강조해온 IMF나 미국을 의식해서다. 일단 “과거와 달리 긴축조치들이 제대로 가동될 경우 추가 차관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볼 때 IMF도 추가 구제금융을 제공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아르헨티나 정부가 이른바 ‘제3의 통화’라는 이중통화 시스템을 도입키로 한 것에 대해서는 반론이 적지 않다. 로드리게스 사아 정부는 평가절하를 단행할 경우 예상되는 국민의 반발을 우려해 이 같은 임시변통책을 내세운 것이지만 아르헨티나를 뒤흔든 경제위기를 잠재우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UBS워버그의 애널리스트 폴 도너번은 “제3의 통화는 사실상 평가절하를 의미한다”면서 “임시 대통령이 태환정책을 고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아르헨티나는 곧 페소화를 평가절하하든지 아니면 극단적인 달러화 정책으로 가든지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 등 역대 아르헨티나 정부의 경제정책 자문을 맡았던 스티브 핸크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에콰도르가 99년 디폴트를 선언한 이후 자국 화폐인 ‘수크레’를 폐지한 선례를 따라야 현재의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월가의 금융전문가들도 아르헨티나가 몇 주 안에 평가절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지는 24일 전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경쟁력 확보만이 10년간의 고정환율제로 인한 폐해를 막고 아르헨티나 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길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