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붕괴 10주년, 러시아는 지금…"잘 살줄 알았는데"

  • 입력 2001년 12월 9일 18시 45분



‘가시밭길의 지난 10년,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수레바퀴.’

8일로 구소련 공산체제 붕괴 10주년을 맞은 러시아인들의 착잡한 심정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까.

러시아와 옛 연방 산하 14개 공화국은 자신들은 물론 전 세계의 역사를 바꿔놓은 구소련 해체 선언 10주년을 기념하지 않았다. 사흘 간의 그리스 공식방문을 마치고 이날 귀국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단 한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10년 전 이날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과 우크라이나의 레오니드 크라프추크, 벨로루시의 스탠리슬라브 셔쉬케비치는 벨로루시 산림의 한 별장에서 연방을 해체키로 합의하고 이 사실을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로 통보함으로써 세계에 알렸다. 그 이후 러시아와 14개 공화국의 10년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울 수 있을 거라는 이들 지도자의 기대와는 다르게 전개돼 왔다.

러시아는 93년 개혁의 부작용으로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초인플레이션과 불황, 급기야 98년 통화의 평가절하와 채무불이행 그리고 은행파산으로 시장경제 몰락 직전까지 몰렸다.

연방해체로 독립을 얻었던 공화국들도 경제난과 잔혹한 내전, 권위주의 지배체제, 인접국 및 이웃 종족과의 전란을 그 대가로 지불해야 했다.

러시아의 독립 여론조사 기관 ‘로미르’가 2000명의 러시아 국민을 상대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가 ‘구소련 붕괴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고 58%는 ‘구소련 해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답했다. 이는 구소련에 대해서 러시아인들이 아직도 강한 미련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우파인 자유 야블로코당의 세르게이 이바넨코 부의장의 말은 이 같은 국민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구소련 붕괴에 유감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은 따뜻한 심장이 없는 자이고 그렇다고 오늘날 다시 소련을 복원하려는 자는 미친 사람’이라고 규정한 어느 정치학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면서 “과거 회귀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10년 전 이날 옐친 전 대통령과 역사적 합의를 이뤘던 셔쉬케비치씨는 “전혀 유감이 없다. 우리가 한 일은 모두 옳으며 지금도 그 합의문의 한 문장, 아니 한 글자도 바꿀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계에서 은퇴한 그가 한 달에 받는 연금은 2달러에 불과하며 벨로루시의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정권은 옛 크렘린의 전제주의 정권을 그대로 닮았다.

우크라이나의 크라프추크씨는 “우리 3명은 자유의 수호자가 되려고 했다”면서 “한가지 유감은 우리가 합의했던 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계와 학계에서는 전체주의적 공산체제가 사라진 지난 10년간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가 상당한 진보를 이룩했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이 옐친 전 대통령의 개혁 가속화로 이어져 자유와 시장기업이 번성할 기초를 닦았으며 경제적 위기를 거치긴 했어도 푸틴 체제가 들어선 이후 경제의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지난 2년간 러시아는 구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균형예산을 편성했고 세계경제의 동반 침체라는 악조건에서도 안정적인 경제성장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도 현재의 러시아가 과거 강대국의 지위를 구가하던 구소련에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을 자인하고 있다는 게 외신들의 전언이다.

<홍은택기자·외신종합>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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