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蘇 아프간戰 참전군 증언]아프간은 천혜 요새

  • 입력 2001년 10월 5일 18시 37분


7일 동안 아프가니스탄을 누비면서 “아프가니스탄은 침략군의 무덤”이라는 말을 절감했다. 80년대 구 소련군에 대항해 싸운 무자헤딘(이슬람전사)의 본거지였던 판지시르 계곡 곳곳에는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녹슨 소련제 탱크의 잔해가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소련군이 험하고 낯선 아프가니스탄에서 얼마나 악전고투를 하며 많은 피해를 보았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소련군들이 협곡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다가 무자헤딘의 기습을 받고 쓰러졌다고 북부동맹 사람들이 설명했다.

아프가니스탄 땅을 밟는 순간부터 계속 사방이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을 대하다보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북부동맹의 수도 파이자바드에서 판지시르까지 거리는 360㎞. 한국에서라면 아무리 길이 나빠도 하루면 갈 수 있는 거리를 3박4일 동안 헤매야 했다. 수백m 높이의 고지대에 걸려있는 좁은 낭떠러지길을 목숨을 걸고 곡예하듯 가야했다. 북부동맹 사람들의 안내를 받았는데도 계곡을 잇는 다리는 여기저기 끊어져 있어 멀리 우회하는 일이 반복됐다. 낮에도 모래바람과 먼지로 가끔씩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해가 떨어지면 더 이상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북부동맹 사람들은 겨울이 오고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자동차는 물론이고 탱크나 장갑차도 발이 묶인다고 말했다. 고산지대와 내륙지방 특유의 변덕스러운 악천후도 대단했다. 비는 자주 오지 않지만 툭하면 강풍이 몰아치고 안개가 끼어 그나마 효과적인 교통수단인 헬기의 발을 묶었다. 조종사들은 조금만 날씨가 나빠져도 “목숨이 아깝지 않으냐”며 비행을 중단했다. 좋은 날씨를 기다리느라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하기 위해 타지키스탄에서 꼬박 6일을 기다려야 했다.

<판시지르(아프가니스탄)〓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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