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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4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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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미 워싱턴포스트지에 따르면 미 중앙정보국(CIA)은 99년 빈 라덴을 생포하거나 사살하기 위해 파키스탄 정보장교 60명을 비밀리에 훈련시켜 아프가니스탄에 투입하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막판에 파키스탄에 쿠데타가 발생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당시 미국은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 및 파키스탄 정보당국과 빈 라덴 살해 계획을 세웠다. 파키스탄이 미국에 협조하는 대신 미국은 파키스탄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고 경제지원을 한다는 밀약이었다.
파키스탄 장교들로 구성된 특수부대는 그 해 10월 아프가니스탄 투입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쿠데타를 일으킨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현 대통령)이 이를 백지화하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는 것.
이에 앞서 미국은 98년 8월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 동부에 있는 테러리스트 훈련캠프의 한 모임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66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그가 공습 몇 시간 전에 대피하는 바람에 살해하는 데 실패했다.
미국은 당시 헬기를 이용한 특공대 투입이나 탈레반의 근거지인 칸다하르에 대한 대규모 공습, 빈 라덴 캠프에 대한 미사일 발사 등을 검토했다.
이 가운데 공중급유가 필요한 헬기 작전은 80년 이란에 억류된 미국 인질 구출작전 때 공중급유기와 헬기가 충돌해 미군 8명이 숨진 적이 있어 유사한 사건의 재발이 우려돼 제외됐고 대규모 공습은 민간인 사상자의 발생 가능성 때문에 배제됐다는 것.
이에 따라 미군의 인명 손실 염려가 없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선택했으나 정보 부족으로 빈 라덴을 살해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포스트지는 전했다. 미국은 그 후 빈 라덴의 소재에 관한 정보가 입수될 때마다 특수부대 출동을 검토했으나 결정적 정보가 부족해 추가 군사행동은 끝내 불발에 그쳤다.
윌리엄 코언 당시 국방장관은 “단 한 주도 외교안보팀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고 넘어간 적이 없다”고 말해 미국이 지속적으로 빈 라덴 살해를 계획했음을 시사했다.
한편 수단은 96년 자국에 있던 빈 라덴을 체포해 사우디아라비아에 넘기는 방안을 미국측에 제시했으나 이에 반대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미국이 설득하지 못해 성사되지 못했다.
미국은 당시 빈 라덴을 기소할 증거를 확보치 못한 상태였다. 수단은 이에 따라 그해 5월 빈 라덴을 아프가니스탄으로 추방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