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협상 결렬 위기]파키스탄 외무 "기적 바랄수밖엔…"

  • 입력 2001년 9월 18일 18시 40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이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 인도 요구를 사실상 거부함에 따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 개시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아프가니스탄은 빈 라덴 인도 여부를 확정할 종교지도자 회의를 18일로 예정했다가 연기하는 등 진통을 겪었다.

▽고조되는 위기〓아프가니스탄의 빈 라덴 인도 거부 가능성이 커지면서 사흘의 말미를 줬던 미국이 주말쯤 군사공격에 나설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또 줄곧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은 국경지대에 병력을 배치하는 등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다.

아프가니스탄은 공습에 대비해 영공을 폐쇄하는 한편 파키스탄과의 접경지대인 카이바르 고개에 2만5000여명의 병력과 스커드미사일을 배치했다. 파키스탄도 토르크햄에 주둔중인 공수부대를 증강하는 등 국경 부근 병력을 강화하고 있다.

▽파키스탄 중재〓미국의 최후통첩을 전달하기 위해 17일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파키스탄 대표단은 일정을 하루 연장해 18일 종교지도자 회의가 열릴 예정이던 수도 카불에서 고위 성직자들과 협상을 가졌다.

전날 칸다하르에서 최고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 등 탈레반 정권의 3대 실권자와 8시간에 걸친 협상을 가진 대표단은 이날 오전 카불에서 유력 종교지도자 20여명과 협상을 벌인 후 오후 늦게 이슬라마바드로 돌아갔다.

뉴욕타임스는 “탈레반 정권은 파키스탄이 전달한 최후통첩에 대해 미국측이 받아들이기 힘든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면서 사실상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고 1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오마르가 △빈 라덴의 테러 연루에 대한 구체적 증거 제시 △이슬람회의기구(OIC)로부터 빈 라덴 인도에 대한 승인을 받을 것 △빈 라덴 재판 법정에 최소 한 명의 이슬람교도 판사 등의 조건을 요구했다”면서 “그러나 빈 라덴 체포를 위해 군사력 동원을 결의한 미국이 이들 조건을 수용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압둘 사타르 파키스탄 외무장관은 대표단으로부터 협상 보고를 받은 후 BBC 방송과 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아프가니스탄의 강경한 태도로 볼 때 빈 라덴의 인도를 바라는 것은 ‘기대’가 아니라 ‘꿈’일 정도로 가능성이 희박하다”면서 “이제 기적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현지 언론들은 “대표단이 전제조건 수용여부에 대한 미국의 답변을 갖고 18일 늦게 카불로 돌아가 다시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종교지도자 회의〓CNN은 탈레반 정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오마르가 회의를 소집한 것은 빈 라덴의 인도보다는 전쟁 대책을 논의하고 성전(聖戰) 결의를 다지기 위한 것”이라며 “이 회의에서 빈 라덴 인도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18일 보도했다.

서방 언론기관 소속 기자로는 유일하게 카불에 남아 있던 CNN의 닉 로버트슨 기자는 18일 철수 전 마지막 보도를 통해 “관례적으로 볼 때 회의에 참석하는 인원은 600여명이 넘지만 20여명의 핵심 인사가 결정을 주도하기 때문에 결론은 쉽게 내려진다”면서 “빈 라덴 인도 여부 결정도 하루 안에 내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외신은 종교지도자 회의 결과 빈 라덴을 미국에 인도하는 것을 거부하기로 결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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