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른 조각이 부른 '부시의 시련'

  • 입력 2001년 1월 10일 16시 37분


미국의 차기 노동부 장관에 지명됐던 린다 차베스가 9일 불법체류자에게 거처를 제공했던 전력 문제로 결국 낙마했다. 이 바람에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도 하기 전에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됐다.

차베스의 사퇴는 '자발적인 결정' 이라는 모양을 취했으나 실제론 부시 당선자 진영의 종용에 따른 것이라고 미국 언론은 보도했다. 차베스를 두둔했던 부시 진영이 태도를 바꾼 것은 그녀에 대한 인준을 강행하다가는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

차베스의 중도하차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당초 그는 문제의 과테말라 여성이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부시측에 해명했었다. 하지만 이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으며 연방수사국(FBI) 조사관들을 속이려고 한 사실까지 속속 밝혀졌기 때문이다.

차베스는 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법무장관으로 지명했던 조 베어드가 불법체류자를 보모로 쓰고 그에 대한 사회보장세를 내지 않아 도마에 올랐을 때 사퇴 압력의 선봉에 섰다. 당시 그는 "세금을 안낸 것보다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것이 더 큰 잘못" 이라고 베어드를 몰아붙였으나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와 스스로의 무덤을 판 격이 됐다.

베어드는 입방아에 오른 지 8일만에 사퇴했으나 차베스는 이번에 ABC방송의 첫 폭로 이후 이틀만에 물러났다. 그러나 차베스의 사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는지도 모른다. 민주당은 부시 당선자의 조각 인선의 문제점을 인사청문회에서 거세게 밀어붙일 태세다.

낙마한 각료 지명자

사퇴 인물연도지명 직책사퇴 이유
조 베어드93법무장관불법 체류자 고용
존 타워89국방장관음주·여성 문제
레이먼드 도노반81노동장관범죄조직 연계
루이스 스트라우스59상무장관
킴바 우드93법무장관불법체류자 고용

민주당이 표적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극단적 보수성향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존 애시크로프트 법무장관 지명자와 게일 노튼 내무장관 지명자. 민주당은 부시 당선자가 취임하는 20일 이후에 열릴 인사청문회에서 이들에게 십자포화를 퍼부을 계획이다. 또 각종 인권단체들도 여기에 가세할 것으로 예상돼 부시 당선자는 취임 초부터 '인사청문회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한바탕 곤욕을 치러야 할 할 형편이다.

뉴욕타임스는 10일자에서 "부시 당선자가 조각(組閣)을 서두르다 보니 각료들의 경력을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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