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전문가대담]"美, 北 벼랑끝전술 봐주기 끝났다"

  • 입력 2001년 1월 3일 19시 12분


▽김학준 고문〓1월20일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당 행정부가 출범합니다. 부시 대통령의 대외정책은 전임자 클린턴 대통령 때와는 달리 강성(强性)으로 기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동아시아에 국한시켜 볼 때, 긴장이 예견됩니다. 아주 걱정하는 사람들은 냉전시대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가집니다.

▽김영진 교수〓출범이후 6개월 정도는 기존정책의 타당성과 유효성에 대해 검토하면서 새 정책을 개발하게 될 것이므로 이 시기엔 급격하고 대폭적인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나면서 점차 기존정책에 대한 수정과 보완의 형식으로 새 정책이 나타날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 당선자와 그의 외교안보 관련 정책수립가들은 국제관계 전반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보여줍니다. 힘, 힘의 균형, 억지력 등에 근거한 전통적인 국가이익 개념에 충실할 것이며, 한마디로 파워 폴리틱스(power politics), 즉 ‘힘을 중심으로 한 세계정치와 외교’를 기조로 하는 현실주의 노선을 걸을 것입니다. 중국에 대한 클린턴 대통령 시절의 ‘전략적 제휴’ 노선을 수정하고 중국의 패권적 경향에 민감하게 대응할 것이며, 러시아에 대해서도 역시 클린턴 대통령 시절의 특별 배려와 지원을 축소할 것입니다. 두 나라를 겨냥한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와 전역(戰域)미사일방어체제(TMD)를 강력히 추진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는 긴장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과의 제휴와 동맹은 계속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미일 군사동맹의 강화는 두 나라 모두가 바라는 것입니다.

 새해 석학 대담
- 美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
- 美 동아시아 전문가 제럴드 커티스
- 美 한반도 전문가 김영진 교수에 듣는다
- 美 철학자 리처드 로티 교수
- 佛 피에르 레비교수-김동윤교수

▼유화적 '페리 보고서' 재평가▼

▽김학준 고문〓북한에 대해서도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서처럼 강하게 대처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지난해 10월에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입니다. 이 문서는 두 나라 관계를 평화관계로 전환시킬 것을 다짐했던 것인데, 부시 행정부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이 약속에 어떤 구체적 진전이 나타날까요? 한국에서는 대체로 미국의 북한정책에 큰 변화가 없으리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김영진 교수〓부시 진영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클린턴 진영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첫째, 클린턴 행정부의 북한정책의 기본틀이 되어 온 페리 보고서는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페리 보고서에 대해 회의적이고 재평가하고자 할 것입니다. 둘째, 북한의 핵 및 미사일에 대해 “철저한 통제와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일 것입니다. 미사일 수출을 자제할 터이니 보상해 달라는 북한 요구에 대해서도 부정적일 것입니다. 또 “북한이 1994년의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핵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시할 것입니다. 잘 아시듯이,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1994년 이전에 개발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핵 문제에 대해, 즉 ‘과거 핵’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는 이 문제 역시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을 취할 것입니다. 셋째, 북한을 테러지원국가의 명단에서 제외시키는 문제에 대해, 또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대폭적으로 완화시키는 문제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등 신중하게 대처할 것입니다. 넷째, 북한의 인권상황이 개선돼야 한다고 요구할 것입니다. 다섯째,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해 투명성을 요구함과 아울러 선택적 제한적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여섯째,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이뤄진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지지를 보일 것이나, 상호주의 없는 대북지원, 그리고 북한의 군사력 강화에 이바지하는 남북교류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것입니다. 일곱째,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가 요구할 경우 신축성있게 대응한다는 자세이나 현실적인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덟째, 북한이 이제까지 취해 온 ‘벼랑끝 외교’ 즉, ‘문제를 만들어 놓고 결사적 승부를 거는 외교’에 미국은 강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북한식 게임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뜻을 행동으로 보일 것입니다. 부시 진영의 몇몇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북한의 ‘벼랑끝 외교’라는 것이 결국 ‘협박’이라고 보면서 미국이 더 이상 부당하게 ‘협박’에 끌려다녀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김학준 고문〓북한과 미국 사이의 공동성명은, 북한의 발표로는 ‘평화보장체계’의 수립을, 미국의 발표로는 ‘평화조치’의 수립을 약속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정부는 남북한 사이의 평화협정체결을 제의해 놓고 있습니다. 현재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관계당사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조정되고 있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김영진 교수〓북한은 앞으로도 북한과 미국 사이의 평화협정체결을 주장할 것입니다. 저는 클린턴 행정부가 여기에 상당히 기울어져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중대한 양보를 한다면 검토할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쉽게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북―미 공동성명이 부시 행정부에 인계될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해결방향이나 우선순위 등에 있어서는 수정이 가능하다고 부시 행정부는 판단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에서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의 방북 구상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北 양보없인 '평화협정' 불가능▼

▽김학준 고문〓부시 행정부 아래서 북한정책을 놓고 한미간 공조는 쉽지 않겠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김영진 교수〓그렇습니다. 일본 정부 역시 부시 행정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따라서 북한에 대해 미일공조는 이뤄지고 미일이 협조해 한국정부의 북한정책을 견제하는 구도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물론 북한이 새로운 대외정책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얘기는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

▽김학준 고문〓교수님은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직후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됐을 때 이 회담의 역사적 의미는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 선언의 5개항 합의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따라서 화해와 통일이 임박한 듯한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논설을 미국에서 발표했습니다. 그 논설이 그때로서는 국내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지금 다시 읽어보면 정확한 분석이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십니까?

▼대북관계 냉철하게 접근해야▼

▽김영진 교수〓다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두 가지 정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북한은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손을 뗄 수 있는 근거를 공동선언에 마련해 놓았다고 저는 보았습니다. 좀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이렇습니다. “남쪽이 통일하자고 해서, 그것도 우리가 말해 온 연방제도 좋다는 뜻을 보이면서 통일하자고 해서, 우리는 연방제 통일이라면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다는 대의명분에 입각해 응한 것이다. 그런데 대화를 진행시켜보니 남쪽에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아 그만 둘 수밖에 없다.” 이렇게 북한이 자신의 대화 휴면을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를 저는 공동성명에서 읽은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응한 핵심적 동기는 남한의 경제지원 약속인데 이것이 미흡하면 돌아설 수 있는 근거 역시 거기엔 마련되어 있다고 저는 읽은 것이지요. 실제로 북한은 이미 비공식 통로를 통해 남쪽이 경제지원을 약속해 놓고도 지키지 않는 등 ‘배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의 장래를 생각할 때 걱정스럽습니다. 둘째, 공동선언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의 문제에 침묵한 점입니다. 또 주한미군의 철수가 주장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았다고 저는 봅니다. 따라서 이 문제들이 자연히 북한과 미국 사이의 협상으로 넘어가게 된 것인데, 이제 미국에서 강성 기조의 부시 행정부가 들어섰으니 북한으로서도 장고(長考)에 들어설 것입니다. 한반도 문제, 민족 문제에 대해 남쪽은 매우 냉철하게 접근해야 할 때입니다.

▼김영진 교수/20차례 북한방문 '현장정치' 정통▼

김영진(金英鎭·71) 미국 조지워싱턴대 정치학과 명예교수 겸 동아시아연구소 고문은 미국의 동아시아정책과 한반도정책에 밝은 대표적 한국계 학자이다. 지난날 공산권에 대한 여행이 제한돼 있던 시절에 소련과 동유럽 및 중국을 자주 여행했으며 북한도 1970년대 이후 20회 가까이 방문해 오늘날 명목상 국가원수인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대남정책 총책격인 김용순(金容淳) 노동당 비서 등을 비롯한 당정의 고위 인사들을 이미 두루 만났었다. 미국의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의회 언론 등에도 폭넓은 친교를 쌓아 와, 국제정치 현장에 접목된 날카로운 분석을 제시해왔다. 한국에서 보다 일본에 훨씬 널리 알려져 있다.

△1958년 서울대 정치학과와 미국 밴더빌트대 정치학과를 거쳐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음

△1958∼70년 미국 호바트 앤 윌리엄 스미스대 교수, 보스턴대 교수

△1970∼2000년 조지워싱턴대 교수 및 동아시아연구소장, 일본 게이오(慶應)대 및 서울대 객원교수, 영문 계간지 ‘동북아시아평론’ 창간인 및 편집인 아시아―태평양문제 미국협회장

△‘세계정치 속에서의 일본’ ‘한반도와 주변 4강’ ‘미국에서 언론과 대외정책의 관계’ 등 약 10권의 저서 및 약 100편의 논문

▽대담일시:2000년12월21일

▽대담장소:美 메릴랜드州 베세즈다市 김영진교수 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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