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열차사고 스케치]白雪 천국이 '통곡의 바다'로

  • 입력 2000년 11월 12일 19시 27분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기는 젊은이의 천국이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 알프스의 유명한 휴양지 키츠슈타인호른에서 발생한 참사로 숨진 사람은 대부분 10대 청소년과 주말을 가족과 함께 즐기려던 외국인들. 이날 겨울 스키장 개막식과 스노보드 대회가 동시에 열렸기 때문. 설원의 휴양도시는 스포츠의 환호성 대신 터널 속에서 들려나오는 시신의 신원을 확인한 유족의 호곡으로 가득했다. 비극의 터널 안에서는 어린이를 껴안은 채 검개 탄 부모의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 최후의 일각까지 사랑하는 아이들의 목숨을 지키려했던 애틋한 부정(夫情)에 구조요원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사고는 해발3200m의 키츠슈타인호른 스키장까지 운행하는 산악열차가 브란트 데어 그레처반을 오전 9시에 출발한 지 10분만에 일어났다. 로프와 톱니바퀴를 이용해 60도의 경사면을 오르던 열차가 총길이 3200m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 약 600m쯤 들어갔을 때였다. 로프에서 불꽃이 일어 순식간에 객차 뒷편으로 옮겨 붙었다. 객차 뒤편에서 화염과 함께 유독가스가 일어나자 대부분의 승객은 열차 앞부분을 통해 터널 위쪽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터널이 좁은데다 터널 아래쪽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타고 불길이 번지면서 희생자 대부분이 화염에 휩싸였거나 유독가스에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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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존자는 "친구와 함께 불길을 헤치고 객차 뒤편 유리창을 깨고 대피했다" 고 밝혔다. 열차 뒤쪽, 터널의 아래쪽으로 피신한 극히 일부의 승객만 목숨을 건진 것이다.

○…사고직후 잘츠부르크시에서 급파된 소방대와 적십자사 구조요원 200여명이 긴급 출동했으나 터널 속에 유독가스가 가득해 3시간 동안 접근조차 못했다. 뒤늦게 산소마스크를 쓴 채 터널에 들어가 구조작업을 벌였으나 모두 숨진 뒤였다. 사고터널에 연결된 중간역에서 산악열차를 기다리던 승객 세 명도 유독가스에 질식,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승객중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독일인 8명은 터널 아래쪽에서 접근한 소방요원에 의해 구조된 후 헬기편으로 인근병원에 후송돼 치료받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153명의 희생자중 국적별로는 오스트리아 52명 독일 42명 일본 17명 미국 8명 등.

○…현지 언론매체는 이날 스키시즌이 개막되자 오스트리아, 독일 등지에서 겨울스키캠프에 참한 청소년들이 밀려들어 정원을 초과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ORF 방송과 독일 ZDF 방송은 직경 5㎝의 철제 로프가 정원초과 때문에 하중을 견디지 못해 끊어지면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열차운행회사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 점검했을 때 아무 이상이 없었다 며 부실점검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배제했으며 승객의 불장난 때문에 화재가 났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고가 난 노선은 74년 완공됐다. 94년부터 2대의 신형 열차가 투입돼 매시간 1500명의 승객을 스키장까지 실어날랐다. 오스트리아는 이 열차가 산 속을 관통해 정상에 오르는 세계 최초의 열차라고 자랑해 왔다. 이 일대에는 60대의 산악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볼프강 쉬셀 오스트리아 총리는 11일과 12일 이틀을 애도기간으로 선포했으며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희생자 가운데 영국 청소년이 많이 포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쉬셀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신속한 사고수습을 당부했다.

<백경학기자·잘츠부르크·빈=외신종합연합>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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