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쉰들러'도 역사왜곡 '얼룩'

  • 입력 2000년 11월 8일 18시 58분


일본의 구석기유물 발굴 조작사건이 역사학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판 쉰들러’ 스기하라 지우네(杉原千畝)의 인도적 행동을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문제가 되고 있다. 당시 외무성 차관 등 정부 관계 인사들이 그때의 인도적인 행동은 그의 개인판단이 아니라 일본 정부에 의한 것이라며 공을 가로채려 하고 있는 것.

스기하라는 1940년 리투아니아 주재 영사관 부영사로 근무하면서 나치의 탄압을 피해 영사관에 몰려온 유대인 2139명에게 일본 통과비자를 발급한 인물. 그러나 그의 비자발급 과정은 순탄치가 않았다.

영사대리 업무를 맡고 있던 그는 유대인들이 일본을 경유해 탈출할 수 있도록 비자 발급을 해야 한다는 전문을 본국 외무성에 몇 차례 보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한 것. 당시 일본의 외국인입국령은 최종목적지의 입국비자 수속을 끝내고 일본에서의 체재비를 충분히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경우에만 통과비자를 발급하도록 돼있었다.

결국 그는 시간에 쫓기고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 본국의 훈령을 어기고 스스로의 결단으로 비자를 발급해 가족을 포함해 6000여명의 생명을 구했다.

그는 전쟁 직후 2년간 현지에 억류됐다가 귀국하자 훈령 위반을 이유로 즉시 해고통고를 받고 사회로부터도 냉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고마움을 잊지 않았고 69년과 85년 이스라엘 정부가 스기하라에게 훈장과 상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스기하라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가 본격화되자 일본 정부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기하라 본인이 사망한 지 14년이 지난 올 10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외상이 그의 부인 사치코를 만나 지금까지의 ‘무례’를 공식 사과한 것. 또 훈령위반 비자발급 당시 외무성 사무차관을 지냈던 오와다 히사시(小和田恒) 등 14명이 중심이 되어 스기하라 기념사업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또 다른 역사왜곡이 진행되고 있었다. 기념사업회는 98년 5월과 지난달 10일 스기하라의 초상화를 제작하고 기념현판을 설치하면서 ‘훈령을 어겨가면서 비자를 발급했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특히 오와다 전 차관은 “비자발급에 반대했던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스기하라가 일본정부의 훈령에 따라 발급했으며 인도적 행동은 ‘일본 정부의 공’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본 외교사료관에는 비자발급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일본 정부 훈령 전보 여러 건이 명백하게 남아 있다. 그의 부인은 물론 역사학계에서도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일본이 이제 와서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그의 공을 가로채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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