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정국 정면돌파"…'침몰정국' 해법 가닥 잡아

  • 입력 2000년 8월 25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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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 사고로 집권 후 최대 위기에 빠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사고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여론에 맞서 서방 잠수함과의 충돌이 사고 원인이라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푸틴은 24일 이고리 세르게예프 국방장관과 블라디미르 쿠로예도프 해군사령관, 뱌체슬라프 포포프 북해 함대사령관의 사표를 모두 반려했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 밝혀질 때까지 문책을 보류하겠다는 뜻이다.

관영 RTR방송은 24일 “18일부터 26일까지 노르웨이 하우코스베른 해군 기지에 기착할 계획이던 미국 해군의 6000t급(LA급) 잠수함인 멤피스호가 당시 현장에 있었다”며 충돌 의혹을 강력히 제기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즉각 “멤피스호는 쿠르스크호 사고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부인해 공방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 공방전은 러시아측의 해묵은 ‘떠넘기기 전술’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노르웨이 정찰기가 쿠르스크호의 침몰 당시 수중 청음기를 통해 2차례의 폭발을 탐지했다고 노르웨이 언론이 25일 보도하기 시작했기 때문. 그렇다면 서방잠수함과의 충돌 때문에 침몰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푸틴은 ‘사고 직후 서방의 구조지원을 거부해 참사를 불렀다’는 비난에는 “사고가 일어난 지 사흘만인 15일에야 서방측의 공식적인 구조지원 제의가 있었으며 러시아는 이를 즉각 받아들였다”고 강변했다. 이에 대해 NATO측은 “14일 지원을 제의했으나 오히려 러시아측이 16일까지도 독자적으로 구조를 강행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며 황당해 하는 표정이다.

푸틴은 사고 소식을 듣고도 흑해연안에서 휴가를 즐겼다는 비난을 의식해 22일 쿠르스크호의 모항인 비두아예프에서 유족과 함께 6시간여 동안 슬픔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푸틴은 이번 사건을 국방비 증액과 군개혁을 밀어붙일 기회로 삼으려는 뜻을 비쳤다. 푸틴은 25일 사고 후 처음으로 관영 일간지 로시스카야 가제타와 회견을 갖고 “나는 앞으로 군과 함대, 국민과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푸틴은 24일 군인과 내무부(경찰) 법무부(검찰) 등 공안기관 공무원의 봉급을 12월 1일부터 120% 올리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통령 포고령에 전격 서명했다. 군부 등 권력기관의 동요를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다.

현재 푸틴에 대항할 만한 뚜렷한 정치세력이 없어 그의 권력기반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하지만 푸틴의 앞에는 한동안 멀고 험난한 길이 펼쳐질 것으로 보여 그가 이 위기 국면을 어떻게 넘길지 주목된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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