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체트 단죄 법정 설까…군부-기득권층 노골적 반발

  • 입력 2000년 8월 9일 18시 27분


‘종신 상원의원’이란 자리를 만들고 스스로 면책특권을 부여하면서까지 권력을 놓은 다음의 안전을 도모했던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트 피노체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8일 칠레 대법원은 그에 대한 면책특권을 박탈키로 결정함으로써 집권기간(1973∼90년) 중에 그가 저지른 고문과 정적 살해 등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단죄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그의 건강과 국내 정국상황을 감안할 때 유죄 판결을 받게 될지는 미지수다.

우선 아직도 피노체트 지지층이 권력의 핵심에 상당수 포진해 있다. 특히 독재정권 아래서 권력의 달콤한 맛을 즐겼던 군부 세력은 그에 대한 처벌을 반대하고 있다.

또 군정 시절 이뤄진 경제성장의 과실에 향수를 갖고 있는 기득권층 역시 피노체트에 대한 단죄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군부 최고지도자들은 대법원 판결 직후 피노체트를 방문해 “변함없이 당신을 지지하겠다”는 ‘충성 서약’을 전달하는 등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84세의 피노체트가 특수한 성격을 띤 이상 심리가 길어질 것으로 보이는 이번 재판을 끝까지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스페인의 요청에 따라 그를 가택연금 조치했던 영국 정부도 건강상의 이유로 결국 사법처벌을 받기 곤란하다며 스페인으로 신병을 인도하는 것을 포기한 바 있다.

피노체트는 현재 심장질환과 당뇨병 등 질병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의회 내 피노체트 지지파는 피노체트가 고령이기 때문에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해서는 안된다는 법안을 제출해놓은 상태다.

물론 칠레 내 국민정서나 국제상황은 피노체트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직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공정한 결정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또 칠레 정부는 과거 여러 차례 사법처벌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칠레 내부의 복잡한 사정 때문에 재판 시작은 늦어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