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베트남 무역협정]終戰 25년만에 시장 개방

  • 입력 2000년 7월 14일 19시 23분


미국과 베트남은 13일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25년 만에 양국간의 교역을 정상화하는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샬린 바셰프스키 미 무역대표와 부 콴 베트남 무역부장관은 지난 4년간 진행돼온 양측 협상을 이날 워싱턴에서 마무리짓고 역사적인 무역협정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베트남의 대미 수출품 관세를 종전의 평균 40%에서 다른 국가들과 같은 수준인 3% 이하로 낮추기로 했다.

대신 베트남은 미국 상품 용역 수입관세를 낮추고, 투자 제한을 풀며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로 약속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이 협정은 베트남 경제를 극적으로 개방하고 양국간의 교역을 증대시킬 것”이라며 “이는 양국간의 정상화와 화해를 모색해가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역사적인 단계”라고 말했다.

이번 협정이 발효되기 위해선 미국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동안 미국 노동계는 베트남처럼 저임을 이용해 대미 수출을 할 수 있는 국가와의 교역은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반대해 왔다.

따라서 의회에서 어느 정도 논란이 예상되나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이 베트남과의 교역 정상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일단 통과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미국 언론은 보고 있다.

특히 클린턴 대통령은 이번 무역협정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중동정상회담으로 바쁜 중에도 백악관으로 돌아와 직접 서명하고 성명까지 발표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이같은 의지로 미뤄볼 때 양국간의 무역협정은 연내 발효될 가능성이 높다. 베트남은 10월 정기국회에서 협정을 비준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협정 체결로 그동안 연간 교역액이 10억달러 수준에 머물던 양국간 교역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은행은 협정 체결로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에 대한 베트남의 수출이 96년의 약 3억3000만달러 수준에서 7억6000만달러 수준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베트남의 저임금, 숙련 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미국 기업의 진출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미국 회사는 제화업체인 나이키와 곡물회사 카길 등에 불과하나 협정체결로 투자 장벽이 낮아짐에 따라 앞으로는 통신 금융 소매 유통업 등 미국 기업들의 진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협정이 체결되기까지는 곡절이 적지 않았다. 양국은 96년 9월부터 공식 회담을 시작해 지난해 가을 최종 타결단계에 이르렀으나 베트남 공산당이 시장개방에 따른 통제력 상실을 우려, 협정조인을 무기연기하는 바람에 진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침체가 좀처럼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외국의 투자도 급격히 줄자 베트남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미 무역협정을 체결한 것으로 미국의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하원이 최근 중국에 항구적인 정상무역지위(PNTR)를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미―중 교역 정상화에 따라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현실화 단계에 접어든 것도 베트남을 자극한 요인이 됐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번 협정 체결을 계기로 베트남은 80년대 이후 시장경제원리를 제한적으로 도입하며 조심스럽게 추구해온 경제개혁과 개방의 수위를 한단계 더 높일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베트남이 중국처럼 PNTR를 얻어 WTO 가입을 추진하게 되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려야 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지는 내다봤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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