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안 7개월만에 귀국…쿠바정부 '조용한 환영'

  • 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27분


“엘리안! 엘리안! 엘리안!”

28일 오후 7시45분 쿠바의 수도 아바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

여섯살배기 쿠바 난민소년 엘리안 곤살레스는 쿠바 국기를 흔드는 또래 아이들 800여명의 열렬한 환영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7개월만에 다시 고국 땅을 밟았다. 외교는 물론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어린 소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7개월 동안의 어색한 외국체류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엘리안은 활주로에서 기다리던 친척들의 품에 안기고 나서야 고향에 온 걸 실감한다는 듯몇 개가 빠진 앞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엘리안이 다니던 아바나 동쪽 145㎞의 카르데나스 마을 ‘마르셀로 살라도’ 초등학교에서나온 교사와 급우들이 엘리안을 끌어안은 뒤 헹가래를 치며 반겼다.

이날 공항에는 그동안 엘리안의 아버지 후안 미겔 곤살레스를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던 리카르도 알라르콘 쿠바의회 의장이 정부관리로는 유일하게 나와 엘리안 부자를 맞았다. 기자회견이나 공식 환영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엘리안의 귀국을 될 수 있는 한 조용하게 축하하자는 쿠바 정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초등학교 교우들 환영 헹가래▼

4월초 엘리안의 아버지가 미국으로 출국할 당시 공항에까지 나왔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도 엘리안의 귀국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쿠바 정부는 이날 엘리안이 귀국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뒤 국영 TV방송을 통해 “지금은 어느 때보다 모든 국민이 최대한 냉정과 위엄, 침착을 유지한 상태에서 행동해야 할 때”라는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다.

엘리안은 쿠바에서 가장 흔한 소형 승용차인 옛 소련제 흰색 ‘라다’를 타고 급우들에게 손을 흔들며 공항을 빠져나갔다. 쿠바 당국은 엘리안을 곧바로 귀가시키지 않고 ‘안전한 곳’에 격리시킨 채 2∼3주 동안 ‘조용히 관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28일 오후 4시45분 미국 버지니아 덜레스 국제공항.

▼2~3주 안전한 장소 격리 관찰▼

“미국 정부와 국민에게 감사드린다. 집으로 가게 돼 너무 행복하다.” 엘리안의 아버지 곤살레스는 간단한 인사말을 남기고 아들과 쿠바행 전세비행기에 올랐다. 엘리안의 새 엄마와 이복동생 등이 동행했다.

같은 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미국 정부는 법치의 원칙을 지켰다”며 “(엘리안 문제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덜 주는 방향으로 조용히 해결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7개월간 미국과 쿠바의 외교쟁점이 됐던 엘리안 부자의 귀국은 이날 미 대법원이 엘리안의 출국을 막아달라는 친척들의 상고를 기각한 덕분에 실현됐다. 미국에 사는 엘리안의 친척들은 엘리안에게 난민의 지위를 부여해 미국에서 살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거부했다.

대법원 결정에 격분한 엘리안의 미국 거주 친척들은 인터뷰를 요청하는 방송 기자들에게 욕을 하는 등 분노를 표시했다. 엘리안의 미국 거주를 요구하던 플로리다의 쿠바계들도 눈물을 흘리며 엘리안의 출국 장면을 TV로 지켜봤다.엘리안의 양육권을 둘러싼 미국 거주 친척과 쿠바에 사는 아버지간 분쟁의 이면에는 쿠바 출신 이민자들과 미국민의 반쿠바 정서,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쿠바 국민의 분노와 반감 등이 깔려 있다. 엘리안이 그동안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복잡한 싸움들’을 이해하려면 긴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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