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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6월 27일 19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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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자치령 편입▼
▽발단〓1897년 스페인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1917년 푸에르토리코를 자치령으로 만들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은 비에케스섬을 사격훈련장으로 만들기 위해 강제로 면적의 75%를 매입한 뒤 주민을 이주시켰다. 미국은 41년부터 사격훈련을 실시하면서 조업까지 금지시켰다. 섬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78년 처음으로 대규모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지난해 4월 19일에는 미군 전투기가 훈련도중 500파운드 규모의 폭탄을 잘못 떨어뜨려 주민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에 주민 200여명이 항의단을 조직해 사격장 안에서 야영을 하며 시위를 계속 벌여왔다.
▽추이〓오폭사고 이후 주민들이 ‘인간방패’를 형성하자 클린턴 대통령은 “사격장폐쇄 여부를 주민투표에 부쳐 주민이 찬성할 경우 2003년 5월까지 철수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주민들과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을 주장하는 정치인, 미 환경단체는 이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은 “사격장을 무단으로 점거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25만달러의 벌금에 처하겠다”고 발표한 뒤 지난달 연방수사국(FBI)요원을 동원해 시위자 200여명을 강제 연행했다.
이에 맞서 푸에르토리코의 야당지도자 루벤 베리오스와 독립당의 페르난도 마르틴 부총재는 “미군이 훈련을 재개할 경우 미 대통령선거에서 히스패닉계의 반대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푸에르토리코 내 반미감정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25일 내슈빌호와 바탄호 등 전함 5척과 항공모함에 탑재된 전투기가 참가하는 폭격훈련을 단행함으로써 이를 막으려는 주민들과의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대규모 훈련… 주민 갈등▼
▽피해상황〓직접적인 피해는 미군의 오폭으로 인한 사망 1명과 부상 4명. 그러나 미군이 섬의 75%를 점령해 기지와 사격장으로 섬을 양분함으로써 대부분이 어민인 주민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특히 울창했던 열대림이 폭격으로 인해 황무지로 변하면서 2만명이 섬을 떠나 주민은 30% 가량인 9400명으로 줄어들었다.
미 환경운동가인 로버트 케네디 2세는 최근 이곳을 답사한 결과 “인근바다에 있는 산호초에서 수만발의 탄약과 탄피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격과정에서 나온 유독성 화학물질과 우라늄탄이 부식되면서 식수원에서마저 TNT나 RDX같은 고성능 폭약성분이 발견돼 주민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다.
최근 푸에르토리코 보건부의 조사결과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주민들의 상당수가 피부병과 천식을 앓고 있고 암발생률도 푸에르토리코 평균율보다 26%나 높게 나타났기 때문.
▼美대선쟁점 부상 전망▼
▽해결가능성〓미국은 올들어 주민시위가 격해지고 국제적인 비난여론이 비등하자 페드로 러셀 푸에르토리코 총독에게 주민투표를 통해 사격장 폐쇄를 결정할 경우 3년 내의 사격장 폐쇄와 공포탄 사용, 피해보상으로 4000만달러 지급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사격장 폐쇄만이 해결책이라며 이를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비에케스섬 사태는 푸에르토리코의 미 연방의 한 주로 편입되는 문제와 맞물려 미 대통령선거의 한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