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强, 남북회담에 기대-우려…美-러정상, 北核 논의

  • 입력 2000년 5월 29일 19시 27분


다음달 12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국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4강국은 남북한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급속히 진전될 경우 동북아에 지금까지와는 판이한 안보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을 예견하고 대비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중국국가주석은 28일 전화통화를 갖고 한반도 안정 증진과 핵 비확산 문제 등을 논의했다고 마이크 해머 백악관대변인이 전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어 다음달 4,5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개발과 한반도 안정 문제 등을 주요의제로 다룰 것이라고 새뮤얼 버거 미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이 발표했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 정상이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것은 관례적이기는 하지만 다가오는 미-러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문제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이 29일 전했다.

4강국의 한 축인 일본의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도 29일 한국을 방문,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일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4강국의 외교담당자들은 남북정상회담이 21세기 변화의 대세와 맞물리면서 동북아의 질서 재편을 촉진할 것으로 판단, 정세판단 및 대응방안 마련을 위해 활발한 접촉을 하고 있다고 외교문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미 국방부가 최근 반세기 동안의 군사전략을 수정해 유럽 대신 아시아를 최우선 전략 요충지로 설정했다는 보고서가 공개된 것도 한반도에 대한 강대국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실증적 사례다.

외교 전문가들은 4강국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기대를 가지면서 동시에 우려 섞인 눈길을 보내는 것도 주목의 대상이라고 풀이한다.

특히 미국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남한의 대북지원으로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잃는 것을 우려한다는 것. 정부가 부인하기는 했지만 미국이 정부에 제한적인 대북지원을 요구했다는 27일자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의 보도는 그같은 기류를 반영한다.

중국도 남북정상회담으로 북한에 대한 전통적인 영향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4강국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참여를 차라리 제도화하는 ‘동북아 다자 안보기구’의 창설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남북한과 미 일 중 러 등이 참여하는 다자 안보기구를 통해 불필요한 강대국의 파워게임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고도의 외교력 발휘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제균기자·워싱턴〓한기흥특파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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