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치 前총리 타계]韓-日관계 '공백' 우려

  • 입력 2000년 5월 14일 20시 07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 일본 총리가 14일 사거함에 따라 한국으로서는 일본 정계에서 그리 흔치 않은 ‘동지’를 잃게 됐다.

오부치는 외상 시절부터 한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한국 정계와 깊은 유대를 가져왔다. 무엇이든지 포용한다는 의미의 ‘진공(眞空)총리’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 한국 관계에 대해서도 다른 우익 정치인과는 달리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 노력했다.

특히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는 가까워 자주 전화로 현안을 논의할 정도였다.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재일동포를 비롯한 재일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제정하기 위해 자민당 내 보수파를 설득하기도 했다.

그가 사거함으로써 이제 한국은 공식 채널 이외의 한일 관계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는 입버릇처럼 “오부치전총리의 모든 유지를 받들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모리총리가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모리총리는 29일 하루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는 오부치전총리의 초청으로 이달 말경 김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려던 계획이 무산된데 따른 것이다. 이 자리에서 남북정상회담에 거는 일본측의 기대와 북-일 국교 교섭에 대한 한국측의 입장이 교환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정상 모두 처음 만나는 자리여서 속 깊은 얘기는 오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대통령은 현재 일본을 이끌고 있는 자민당내 보수파와 교류가 깊지 않다.

오부치전총리의 정치적 스승이자 한일간의 비공식 파이프 역할을 맡아 왔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전총리도 병상에서 정계 은퇴를 선언한 상태인데다 한국에서도 4·13 총선을 통해 ‘지일파’가 전멸하다시피 해 양국 관계는 한동안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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