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e가족]대만/"대물림 家業에 '닷컴' 달았죠"

  • 입력 2000년 5월 14일 19시 29분


《대만의 대표적 속담 두 가지 ‘우리 논의 좋은 물을 다른 집으로 흘리지 말라(肥水不流外田)’와 ‘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다(天高皇遠)’. 바로 중국인의 ‘가족주의’를 드러낸 말이다.

대만관련 전문가들은 “잦은 내란으로 외곽 지역에 미치는 중앙정부의 힘이 약했던 중국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중국인에게 믿을 거라곤 가족과 돈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런 역사적 배경은 ‘가족중심의 상업활동’이라는 독특한 가족구조와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대만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어떻게 믿느냐?”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

대부분 가족단위로 이뤄지는 대만의 중소기업 수는 전체 기업의 97.8%. 매출액으로도 전체의 약 30.4%를 차지한다(중소기업처 98년 통계). 게다가 대만의 대표적 대기업들도 ‘출생’은 가족기업. 궈타이보험사, 후빵은행 등을 소유한 차이완린가(家) 등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우리보다 2, 3년 먼저 정보화의 물결을 탄 대만. 이들의 가족은 어떤 변화를 경험하고 있을까.》

대만의 중정공항에서 자동차를 타고 타이베이로 향하는 길. 1층은 상점, 2층은 주택인 ‘주상복합건물’이 도로의 양 옆에 죽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10여년 간 살았던 현지인은 “이 지역 가족들은 대부분 낮에는 1층 상점에서 일하다 저녁엔 2층 주택에서 지낸다”고 말한다. ‘△△유한공사’ 간판이 유난히 많은데 “저런 곳이 대개 바로 가족끼리 운영하는 중소기업”이라는 설명이었다.

대만의 ‘가족중심 경제활동’은 이처럼 도시의 ‘외모’까지 결정했다.

▼가족은 경제활동의 최적 단위▼

‘타이베이 합금재료 유한공사’. 저우씨엔쫑(61)이 25년째 운영하는 중소기업. 이젠 가족 이외의 종업원도 10명으로 늘었지만 경리직은 여전히 아내 장 루이밍(60)이 맡고 있다.

큰 아들 밍치(36)는 대학시절부터 방학이면 아버지의 사업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15년전 대학을 졸업한 뒤 ‘합류’했다.

“대만의 보통 젊은이들처럼 졸업한 뒤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왔습니다. 가족이니까 싫은 소리도 할 수 있고, 가족이니까 당연히 팀웍도 좋지요.”

그러나 변화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 둘째 딸 야오윈(33)은 아버지의 일을 1년 정도 돕다 가족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학위를 받아왔다. 지금은 인터넷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일터에서까지 가족을 봐야 한다는 게 지겨웠어요. 뭔가 새로운 일도 도전해보고 싶고….”

▼진화하는 가족기업▼

지난해 대만 경제부로부터 ‘최고 전자상거래 웹사이트상’을 받은 가족기업 ‘뮤직닷컴’(www.music.com.tw)은 타이완의 가족기업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환경에서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아버지와 두 아들은 ‘음반’이라는 소재를 그대로 지닌 채 환경에 따라 4평짜리 음반가게를 자산가치 15억 뉴타이완달러(한화 약 525억원)의 인터넷기업으로 키워냈다.

타이베이에서 남쪽으로 170㎞ 떨어진 중소도시 장화. 아버지 천서우텅(65)은 40여년 전 이곳에 ‘화셩’이라는 음반가게를 열었다. 배달과 수금을 맡았던 맏아들 구오와(37)는 열두살 때부터 때로는 학교도 빠져가며 가게를 도왔다.

“언젠가 이 일은 나의 일이 될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늘 어떻게 하면 쉽게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요.”

1987년 군에서 제대하자 음반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아버지의 음반가게는 소매점들에 음반을 납품하는 중간상으로 성장했지만 이미 ‘경쟁력’을 잃고 있었다.

“우리의 고객인 음반 소매점들이 자꾸만 망해갔어요. 상술이 전혀 없었거든요. 전기를 아끼겠다고 평상시엔 불을 꺼놨다 손님이 들어오면 그제서야 전기를 켜는 경우도 있었어요.”

새로운 판로를 찾아야했다. 그는 대만에서 이틀에 하나씩 생겨난다는 새로운 시장, 편의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90년 화셩에서 몇 백미터 떨어진 곳에다 편의점에 음반을 납품하는 음반도매상 ‘화종’을 차렸다.

“아버진 사업자금으로 3억5천만원(한화)을 주셨죠. 그 뒤 5년간 20억원을 벌었어요.”

다음은 컴퓨터를 전공하고 미국에서 MBA를 받은 남동생 구오슝(31)의 차례.

“미국에선 아마존 등 인터넷사업이 한창이었어요. 우린 음반사업에서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구오와 구오슝형제는 95년 대만 최초로 인터넷을 통해 음반을 주문하면 기존의 유통망인 편의점을 통해 배달하는 비즈니스모델 ‘뮤직닷컴’을 시장에 선보였다.

결과는 대만에서 가장 투자가치가 있는 25개 사이트 중 하나로 부상. 대만의 한 언론은 이들의 성공이유를 어려서부터 늘 음반에 둘려싸여 지낸 ‘환경’덕분으로 분석했다.

이들의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아들들은 자신보다 나은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느냐고.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려면 더 많은 투자자금이 필요하고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기반을 잡아놓은 일을 아들이 한 걸음 더 발전시킨다는 게 좋지 않은가.”

옆에서 듣고 있던 구오와형제는 말했다.

“우리는 지금 5년 뒤 음반시장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버지는 영원히 우리 사업의 지도교수다.”

결혼해 한살짜리 아들이 있는 구오슝이 덧붙였다. “내아들도 당연히 음반일을 할겁니다. 우리보다는 더욱 발전된 형태겠지만요.”

<장화·타이베이(대만)〓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다음주 ‘동아시아e가족’은 홍콩편입니다. 맞벌이가 당연한 곳, 그래서 세끼를 밖에서 사먹는 외식문화가 발달했으며 이들의 자녀를 지원하기 위해 과외비가 낮게 책정된 곳, 홍콩의 가족을 만나보세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