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KAL기 사고 합의]소송진행 90여명 거액보상 가능성

  • 입력 2000년 3월 17일 06시 59분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낸 KAL기 추락사고 희생자들과 미국 정부가 합의서에 서명한 것은 몇가지 점에서 놀랄만한 일이다.

우선 배상금 액수가 상상을 넘는 거액이다. 미국 정부가 지급하기로 한 돈은 13명에게 3000만달러로 1인당 평균 230만달러(약 26억원)에 이른다. 이들은 변호사 비용과 세금 등 각종 비용을 빼고도 1인당 평균 20억원 가까이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액수는 대한항공 피해자들이 사고 직후 대한항공과의 합의를 통해 받아낸 1인당 2억5000만원에 비해 8배에 달하는 금액. 이번에 일부 소송제기자에 대해 합의가 이뤄짐에 따라 미국 정부를 상대로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중인 나머지 90여명의 피해자들도 비슷한 액수의 합의금을 받을 경우 모두 합해 2000억원대에 달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인 희생자들에게 지급되는 이같은 거액의 배상금이 모두 미국 정부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 정부가 일단 합의금을 지불한 뒤 대한항공을 상대로 자국 법원에서 다시 소송(구상금 소송)을 내 지급한 돈의 상당부분을 되찾아 가려 할 것이기 때문.

만일 이 소송에서 미국 정부가 전부 승소를 하면 대한항공은 미국 정부가 지급한 합의금을 고스란히 물어줘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진행될 구상금 소송이 주목되는데 미국과 한국의 법조인들은 대략 ‘50대 50’으로 책임비율이 나눠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그 근거는 KAL기 추락사고의 원인이 괌 공항 관제탑의 오(誤)작동에도 있었다는 미국 교통안전위원회의 괌 사고 원인 조사보고서. 김대희변호사는 “소송과정에서 괌 공항측의 추가 과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스턴스변호사도 “소송 초기 미국 정부는 배상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으려 하다가 사실상 책임을 인정해가는 쪽으로 차츰 기울어갔다”고 말했다.

어쨌든 미국 정부가 사고 희생자들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함에 따라 앞으로 비슷한 국제적 사건 처리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고 피해자들은 국내에 비해 배상금이 월등히 많은 미국 등에서 소송을 하려 할 것이다. 이는 곧 국가간의 ‘관할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김변호사는 “이제 국가간 개인간에도 ‘글로벌 리걸 스탠더드’가 적용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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